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과 관련해 지휘권을 발동한 데 이어 여권이 사실상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정부 여당과 검찰 사이의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검찰은 정부 여당의 이른바 ‘윤석열 흔들기’에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한 전 총리 불법 정치자금 관련 진정 사건을 감찰하는 데 대한 입장을 조만간 밝힐 수 있는데다 고위 검사 인사,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도 앞두고 있어 앞으로 양측 간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여당과 검찰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추 장관과 윤 총장을 필두로 한 ‘전면전’ 양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얘기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19일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윤 총장이) 임기 보장과 상관없이 갈등이 이렇게 일어나면 물러나는 게 상책”이라고 밝혔다. 특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추 장관과 각을 세운 지 얼마나 됐느냐”며 “적어도 책임 있는 자세를 갖춘 사람이라면, 나라면 물러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에서 윤 총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설 최고위원이 처음이다.
설 최고위원은 이날 앞서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자리에서도 “윤 총장이 정부와 적대적 관계라고까지 하기는 지나치지만 어쨌든 각을 세운 것은 만천하가 아는 사실”이라며 “조만간 결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 장관도 전날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위증교사 의혹을 대검찰청 감찰부가 아닌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게 배당한 것을 두고 “옳지 않다. 관행화돼서는 안 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신속한 진행·처리를 위해 대검 감찰부에 중요 참고인을 직접 조사하게 했다”며 직접 지휘권도 발동했다.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한 검찰의 위증교사 의혹 조사를 두고 정부 여당이 연일 윤 총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모양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당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조만간 입장표명 등 반격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검찰은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위증교사 의혹이 감찰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3년이라는 징계시효가 완료됐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추 장관이 진정인에 대한 조사를 대검 감찰부에 맡긴 만큼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게다가 검찰은 다음달 중 고위직 인사를 앞두고 있다. 추 장관은 전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조만간 검찰 인사가 예정돼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형사·공판부에서 묵묵히 일해온 인재들을 발탁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경우 특수통 중심의 ‘윤석열 사단’ 해체에 속도가 붙으면서 양측 간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 여기에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립까지 맞물릴 경우 정부 여당과 검찰의 ‘총성 없는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설 최고위원이 윤 총장 사퇴를 언급하면서 여당과 검찰 간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라며 “다음달 취임 1주년을 맞는 윤 총장의 속내가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추 장관이 밝힌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직접 수사 범위를 대폭 줄이는 것이라 검찰 인사와 동시에 조직개편 등까지 한꺼번에 이뤄질 수 있다”며 “최근 법조계 안팎에서 윤 총장이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발로 사퇴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도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후폭풍이 만만찮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