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서 본 정의당은, 똑똑하고 화가 나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계속 말하기에 지쳤으니 듣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장혜영 정의당 혁신위원장은 지금의 당을 ‘압력이 꽉 차 있는 상태’에 비유했다. 총선 결과를 두고 “이대로 안된다”는 위기감과 “생각보다 큰 위기가 아닐 수 있다”는 낙관론이 공존했고, 쇄신을 외치는 당원들과 학습된 무기력감을 겪는 이들이 한 배에 있었다. 장 위원장은 이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높아진 긴장감을 해소하는 ‘어려운 곡예’를 하고 있었다.
장 위원장은 1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진보정치 20년 아래 목표했던 것에 비해 기대보다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고, 반복되는 시도에 지쳐있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장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입당한 후 6개월 만에 4·15총선 비례대표 후보로 도전해 당선됐다. 지난달 24일부터는 혁신위원장으로서 당을 정비하는 중책을 맡았다. 장 위원장은 “우리 당을 ‘디톡스’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쌓여있었던 노폐물을 걸러내고 새롭게 건강한 상태를 만드는 과정”이라며 “정확하게 문제를 노정하고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면 이것이 혁신 당 대회의 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위원장은 정의당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를 “‘정의당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냐‘는 한 문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고(故) 노회찬 전 대표의 진보정의당 당대표 연설을 언급하며 “6411번 버스에 탄 이들을 정의당이 대변하고 있나. 아마 지금까지는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의당은 명확하게 대중정당이고, 앞으로 대중정당일 것이다. 이를 확인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혁신위가 맡은 또 다른 과제 중 하나는 ‘지도체제 개편’이다. 이에 대해 장 위원장은 “중요하지만 본질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정의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이 가령 ‘심상정 지도체제라서 지지하지 않는다’, 혹은 ‘최고위원제라면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의당이 어떤 가치를 쏘아 올리는 정당이냐는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장 위원장은 그 가치를 앞서 정의당이 발표한 다섯 가지 정책 과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비동의강간죄’, ‘차별금지법’ 입법과 ‘그린 뉴딜 추진’,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으로 정리했다. 장 위원장은 “지금 정의당에 필요한 혁신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 생각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캠페인들을 잘 해내고 실질적으로 성과를 만들어내는 게 우리의 선명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이게 정의당다운 혁신”이라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은 장 위원장에게는 남다른 애착이 있는 법이다. 성별, 성 정체성, 장애(신체조건) 등의 조건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근거를 만드는 이 법을 통과하기 위해 여러 시도들이 있었지만, 번번이 좌초했다. 보수 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한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19대 국회 때 김한길·최원식 전 민주당 의원은 이 법안을 발의했으나 철회됐고, 20대 국회에는 입법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공동발의에 참여할 10명을 모으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장 위원장은 차별금지법 입법을 21대 국회 자신의 1순위 과제로 꼽았다. “방금도 오체투지를 하다 와서 머리에 차별금지법이 가득하다”는 장 위원장은 장애인 동생의 언니이자 영화라는 수단으로 활동한 장애인권운동가이기도 하다. 장 위원장은 “이번에는 발의가 꼭 된다. 발의 자체는 커다란 숙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통과가 목적”이라며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분들 중에 (다른 당에서도) 관심 있어 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기대했다.
장 위원장은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장 위원장은 “기본소득 논의 자체는 적절한 타이밍에 진행돼고 있다”며 “논의의 전제는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을 대체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복지체제 위에 추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보험’ 문제에 대해서는 “늘 사용자성에 대한 문제에서 난항을 겪어왔는데, 고용 계약이 아니라 소득 중심으로 전환하면 된다는 아이디어가 흥미롭다”고 했다. 그는 “기본소득과 전국민 고용보험은 결코 경합하는 관계에 있지 않고, 둘 다 같이 논의해볼 수 있는 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