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칼럼

[여명]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산업부장 김현수

자기복제하듯 복잡하고 많은 규제

매일 교도소 담장위 걷는다 하소연

뿌리깊은 반기업 정서는 또 어떤가

홀로 가시밭 걷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5년 만에 만난 형님과 소주 한잔을 기울였다. 상대는 20년 동안 대기업 중국 주재원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이맘때 지방에 사업체를 내신 분이다. 지지리도 운이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올 줄 누가 알았겠나. 요즘은 돈 구하러 다니고 각종 인허가 내는 게 일이다. 그나마 코로나19 덕분에 은행 문턱은 낮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걸림돌이 여기저기서 발목을 잡았다. 얼큰히 취해 헤어지며 그는 “사업하기 참 힘들다”고 넋두리를 했다.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한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규제는 자기복제를 한다. 하나의 규제를 해결하면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규제가 튀어나온다. 작은 기업일수록 규제비용 부담은 더 크다. 중소기업 옴부즈맨실에 따르면 50인 미만 소기업의 매출 대비 규제비용 비중은 6.6%인 데 비해 300인 이상 중견기업은 2.3%이다. “군청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지만 진입로 포장 규제도 풀지 못했다”는 말처럼 기업인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규제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창업 1년을 채울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한달마다 돌아오는 월급날은 고통이다. 가파르게 오르는 최저임금을 맞추며 공장을 돌리려면 직원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사업체를 물려주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상속세를 내는 것보다 사업 포기하고 건물을 사서 물려주는 게 낫다. 굳이 비싼 세금 내가면서 자식까지 기름때 묻혀가며 일하는 꼴이 보기 좋은 부모는 없다. 그런데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을 하고 공장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다. 주변 공장 사장들이 지쳐 떠나가지만 그래도 직원들 월급이라도 건지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공장은 돌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야 한다. 한발만 헛디디면 바로 교도소 담장 안으로 떨어진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11개 경제부처 소관 경제법률 형벌조항 전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환경·경제 관련 285개 법령상 형사처벌 항목이 2,657개에 달했다. 특히 형사처벌 항목 중 기업과 기업인을 동시에 처벌하는 항목이 2,205개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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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나 법령·세금 등의 압박은 그나마 견딜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비합리적인 반기업 정서를 극복해야 한다. 기업인에 대한 이미지는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머물고 있다. 시대의 변화만큼 기업도 변했지만 반기업 정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검찰수사심의위의 결정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반기업 정서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수사심의위가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를 내리자 여권과 진보 시민단체는 ‘유전무사, 무전유사(돈 있으면 수사도 없고, 돈 없으면 수사한다)’라는 말까지 만들어 검찰에 기소 강행을 압박한다. 억지다. 여기다 불기소 권고안이 나오자 무작위로 추첨돼 참석한 심의위원들의 자격을 걸고넘어진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애초 수사심의위는 돈 없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공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기소를 촉구했다. 어이가 없다. 결국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만든 법이니 돈과 권력이 있는 이 부회장은 해당 사항이 없다는 논리다. 반기업 정서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11조도 무시한다.

지난해 2월 문재인 대통령은 벤처기업인과 만나 “기업들은 투명한 경영으로 여러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 기업을 향한 국민들의 의식 개선은 금세 이뤄지리라 본다”고 말했다. 국민의 의식 개선보다 대통령은 여권의 의식 개선을 주문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규제도, 법령도, 반기업 정서도 모두 기업인이 스스로 해결하고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오늘 만날 기업인에게 존경한다는 인사부터 해야겠다. hskim@sedaily.com

김현수 기자
hs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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