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분양

"사람 없어요"…매물마저 씨 마르자 세입자, ‘눈물의 전셋집 사수’

<전세대란이 빚은 웃픈 현실>

밤 늦게 퇴근하고 주말 여행가고

약속시간 넘으면 집 보여주기 거부

갈곳 없는 세입자들 문 잠그며

집 사려는 수요자와 '을'과 '을' 전쟁




# 내 집 마련을 위해 최근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 아파트를 알아보던 A 씨는 공인중개사 측의 신신당부로 원래 예약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해 부동산 사무실에서 기다렸다. 알아보려는 집에 현재 세입자가 살고 있다. 그 세입자가 ‘시간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A 씨는 “지난주에 이 집을 보려던 사람이 20분이 늦었다는 이유로 세입자가 집을 보여주지 않아 결국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며 “헛걸음하지 않으려고 일찍 도착해 집도 최대한 서둘러 보고 나왔다”고 전했다.

전세가가 한 달 만에 수 억 오르고 매물조차 씨가 마르면서 세입자들의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껑충 뛴 가격도 문제지만 전세 매물도 실종됐다 보니 살던 곳에서 다른 전셋집으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 해 진 것이다. 이렇다 보니 현장 곳곳에서는 기존 전셋집을 지키기 위한 세입자들의 눈물 겨운 사투가 나타나고 있다. 결국 정책 발 주거 불안에 집을 사려는 실수요자들과 계속 거주하려는 세입자들 사이에서 ‘을과 을의 전쟁’이 펼쳐지는 셈이다. 한 공인 중개사는 “세입자들은 원래 사는 집을 보여주기를 꺼려 하지만 요즘 들어 더 심해졌다”며 “요새는 매수자를 찾는 것보다 매수자에게 집을 보여 주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서울경제가 주요 지역을 살펴본 결과 서울 등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요즘 집 보기 힘들다’는 호소가 나오고 있다. 은평구의 B 공인 중개사는 “집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약속을 잡으려 하면 평일에는 밤늦게 퇴근해 어렵다고 하고, 주말에는 여행을 가거나 고향에 가야 한다며 미루는 경우가 많다”며 “2주 뒤 주말에라도 잡자 하면 그 즈음에 다시 전화 달라고 하며 확답을 해주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 임대인은 부동산 카페에 “집을 내놨는 데 세입자가 부동산 연락을 안 받고 집을 안 보여 주려고 한다. 계속 집을 안 보여주는 경우 어떻게 해야 되죠”라며 상담을 구하는 글도 발견할 수 있다.

관련기사



19일 서울 아파트 전경./권욱기자19일 서울 아파트 전경./권욱기자


심지어 특정 시간을 지정하고는 그 외 시간대는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토요일 오전 10시에서 11시로 아예 확정을 해두고, 그때 오지 못하는 경우 보여주지 못한다고 미리 못 박는 식이다. 막상 현장에 도착해도 제한을 받는 경우도 나온다. 최근 마포구에서 집을 알아 봤다는 B 씨의 경우 “가족들이 살 집이라 당연히 온 가족이 갔는데, 거주하고 있는 분들이 ‘코로나도 있으니 한 명 만 대표로 들어오라’해서 부인만 들어가서 보고 왔다”고 전했다.

세입자들 입장에서도 그럴만한 사정은 충분하다. 최근 들어 전세가가 급등하는 데다 물량 자체도 없기 때문에, 현재 거주하는 곳이 팔려 새로운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게 되는 경우 전셋집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강서구에 거주하는 한 세입자는 “최근 한 달 사이 전세가가 1억 가량 올랐고, 매물 나오는 것도 그나마 월세 중심인데 만기가 다가오는 집이라면 당연히 걱정이 되지 않겠느냐”며 “기존 주인이 만기 이후에도 보유하게 되면, 보증금을 좀 올려주더라도 당장 살 집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시세차익으로 인한 자본수익과 임대수익이라고 봤을 때 세금 부담을 높여 자본수익을 줄이면 결국 임대수익을 노리고 임대료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며 “임대차 3법을 순차적으로 적용하는 등 앞으로 시장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흥록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