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비대면 진료가 수면 위로 떠오른 뒤 의대 정원 확대와 한방 첩약 급여화,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 등 보건의료계가 그간 쉬쉬해오던 민감한 이슈들이 정부 여당을 통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새로운 의료체계의 필요성이 확인된 만큼 서둘러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운영난을 겪는 업계는 개원의를 중심으로 파업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며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어 하반기 격랑이 예고된다.
20일 정부와 의약계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국면을 맞아 비대면 진료와 의대 정원 확대 관련 논의에 불이 붙더니 지난 17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전체 국회의원들에게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서한을 보내며 해묵은 과제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수술실 CCTV 설치 문제는 애초 의료진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잇단 의료사고와 분쟁이 이어지자 입법 목적이 환자로 옮겨갔다. 지난 19·20대에 이어 이번 21대 국회에도 관련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 이 지사의 발언 이후 다시 쟁점화하는 모양새다.
수술실 CCTV 의무화는 환자와 의료진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 중 하나다. 찬성 측은 의료사고 시 의료진의 조직적 은폐 예방과 의료인의 집중력 제고, 대리수술 등 범죄 사전 방지 같은 순기능을 내세우는 반면 의료계는 인격권과 직업수행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해 사기를 떨어뜨리며 최선의 수술과 수술과목 전문의 모집을 가로막아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며 맞서고 있다. 다만 각종 조사에서 시민 다수가 CCTV 설치를 지지하는데다 어린이집·학교 등 이미 CCTV 설치를 허용한 다른 시설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의료계가 언제까지 방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경기도는 2018년 10월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했고 지난해 수원과 의정부·파주·이천·포천 등 경기도의료원 산하 병원으로까지 확대 보급하며 변화가 이미 시작된 점도 의료계에 불리한 요소로 꼽힌다.
오는 24일 예정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첩약 가격 일부를 건보료로 지원하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의·정’ 갈등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사안에 따라 등을 돌리던 의사와 병원·약사 등 7개 단체는 이번만큼은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나섰다. 효과나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이들은 주장하는데 한정된 건보재정을 둔 이익단체 간 밥그릇 싸움 성격이 짙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당·정·청이 의사를 늘리기 위해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안을 공식화했고 비대면 진료 역시 ‘1차 의료기관의 수익보전’을 전제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가운데 첩약 급여화와 수술실 CCTV까지 더해지자 집중포화를 맞은 의료계는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21일까지 비대면 진료 등 각 이슈에 대한 소속 의사들의 생각과 앞으로 대처 방향을 알아보는 설문을 진행 중인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과정에서 제기된 수가체계 불만과 코로나19에 따른 운영난까지 더해져 파업 같은 극단의 투쟁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가을철 코로나19 대유행이 예상되는 가운데 1차 의료기관이 제 기능을 못할 경우 상당한 혼란과 보건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개원의협의회 간부를 맡은 한 의사는 “경영난까지 더해져 정부에 대한 의사들의 감정이 매우 악화했다”며 “내년 의협회장 선거도 치러져 올해 투쟁 강도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