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부처가 지난 6월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내년 예산 요구액은 올해 본예산 대비 6.0% 증가한 542조9,000억원이다. 하지만 2019년 예산도, 올해 예산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본예산안은 부처 요구액보다 10조원 이상 많았고 이 같은 확장재정 기조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한국판 뉴딜 예산이 오는 2022년까지 31조3,000억원에서 49조원으로 대폭 늘어난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기 대응, ‘선거’라는 정치적 변수까지 겹치면서 현 정부의 재정지출 드라이브는 거칠 게 없는 모양새다. ‘나라 곳간지기’인 기재부가 번번이 당에 끌려간다는 우려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전 재정학회장)는 5일 “여당이 워낙 거대해져서 기재부가 반대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겠느냐”며 “가뜩이나 지금 정부가 재정지출을 성장률보다 높게 써왔는데 코로나19가 겹치면서 막을 명분이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재보선·대선 정치적 변수 겹치며
巨與 재정지출 확대 강하게 요구
정부도 코로나發 적극 역할 견지
내년 4월은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재보궐선거가 열린다. 또 2022년 3월 대통령선거, 6월 지방선거가 있어 현 정부로서는 내년이 성과를 내야 하는 시험대인 셈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중심으로 거대 여당이 재정지출 확대를 강력히 요구하는 배경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권역별 지방자치단체와의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지역 현안사업과 한국형 뉴딜을 중심으로 확장재정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정권을 잡은 입장에서는 퍼주고 표를 얻기 위해 확장재정을 지속하려는 정무적 판단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청은 올해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과정에서도 과감한 재정지출을 강조하면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당초 기재부가 생각했던 50%에서 100%로 확대하기도 했다.
여당에서는 추경을 모두 포함할 경우 실질적으로 재정지출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고 정부를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관계자는 “추경을 반영한 총지출을 감안하면 본예산 대비 10%여도 크게 증액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추경을 포함한 총지출은 2019년 475조4,000억원에서 올해 546조9,000억원으로 확대됐고 여당은 이 규모를 사실상 기준점으로 여기는 셈이다.
정부도 코로나19 충격으로 올해 우리 경제의 역성장이 예상됨에 따라 내년까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견지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올해 본예산(512조3,000억원)에서 10%면 560조원대까지 불어나고 이러한 흐름이면 2022년 예산은 6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된다. 2017년 400조원 시대를 연 지 불과 5년 만에 200조원이 증가하는 것이다. 문제는 보건·복지·고용 분야를 중심으로 한번 늘리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의무지출이 계속 확대되는 점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출에 따른 재정의 성장기여도도 따져보고 경기전망과 세입전망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2년 600조, 5년새 200조 껑충
국세수입은 갈수록 쪼그라들어
아울러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세입부족분을 메우는 세입경정 규모가 11조4,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세수 증가세 제약이 가장 걱정거리다. 기재부는 지난해 293조5,000억원이었던 국세수입이 올해는 279조7,000억원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종합소득세와 법인세는 올해 실적을 기반으로 내년에 걷기 때문에 경기 반등이 있더라도 세수는 기대치만큼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경우 지출을 위해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하고 국가채무와 재정수지 적자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는 “내년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면서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더 키우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3차 추경 시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8%인 112조2,000억원으로 예측하면서 2021년과 2022년도에는 각각 4.7%, 4.6%로 1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보다 내년 세수가 더 들어오기는 하겠으나 법인세가 가장 큰 변수”라고 설명했다. 익명의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내년에 경제회복이 되더라도 올해 성장률이 워낙 낮아 세수 기반이 떨어진다”며 “불확실한 상황인 만큼 일단 필수적인 지출을 중심으로 보수적으로 편성한 다음에 추가로 할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황정원·한재영·하정연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