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어떻게 영감을 얻을까요. 한 권의 책을 만들기까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자주 접한다. 취재에서 퇴고까지, 작가로서의 내 글쓰기 훈련은 지금도 매일 계속된다. 이 질문을 향해 예전에는 ‘글을 어떻게 쓰는가’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대답했다면, 지금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치환해 대답한다. 좋은 삶을 살아야 비로소 좋은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삶은 엉망인데 글만 번지르르하다면, 그건 내 삶을 속이는 일이다. 언제 글과 삶이 제대로 만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세상이 내 상처에 말을 거는 순간’, 그리고 ‘세상이 내 기쁨에 말을 거는 순간’이라고. 내게 글쓰기는 단지 직업이 아니라 삶을 더 뜨겁게 살아내기 위한 살아있는 미디어다. 내 삶이 더욱 치열하고 열정적일수록 더 좋은 글이 나온다. 삶이 권태와 우울에 빠질 때, 글쓰기 또한 좌충우돌한다. 더 나은 글을 위해 나의 마음과 몸상태를 최고로 끌어올리는 것 또한 중요한 글쓰기 훈련이다.
내가 문학, 여행, 심리학을 글쓰기 재료로 가장 자주 활용하는 이유도, 바로 이 세 가지가 ‘내가 삶과 가장 뜨겁게 만나는 순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문학은 작품의 주인공들을 통해 더 다채로운 삶의 현장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여행은 반드시 집밖으로 멀리 나가야만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세계 속으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준다. 심리학은 언제 어디서나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는 내면으로의 만능 여행 티켓이다. 심리학을 공부한다는 것, 그것은 아직 상처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내 마음속으로의 여행이기도 하고, 그토록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웠던 타인의 내면을 향한 여행이기도 하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최소한 100여 권 이상의 책을 읽는 것이 내 취재의 첫걸음이다. 더 깊이 네 상처를 건드리는 책, 그래서 더 가슴 아픈 책, 더 내 마음에 커다란 깨달음의 발자국을 남기는 책이 글쓰기에 영감을 주는 책들이다.
최근 ‘헝거’, ‘하틀랜드’,‘배움의 발견’을 읽으며 큰 영감을 얻었다. ‘헝거’는 소녀 시절 첫사랑으로부터 당한 끔찍한 성폭력의 상처를 딛고 마침내 뛰어난 작가가 된 록산 게이의 이야기다. ‘하틀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에서 태어나 대대로 ‘미국 시골 백인 빈곤층’으로 살아오며 온힘을 다해 자신의 삶을 개척한 작가 세라 스마시의 이야기이며, ‘배움의 발견’은 퀘이커 교도인 아버지의 신념에 따라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고 제도교육은 물론 병원치료도 받아본 적이 없는 소녀 타라 웨스트오버가 ‘배움’과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주체로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이 모든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삶을 파괴하는 끔찍한 트라우마로부터 스스로 자신을 구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에게 영감을 주고, 용기를 주며, 또한 이제 나 또한 나만의 이야기를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내 삶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상처를 어쩔 수 없이 표현해야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 상처가 더 이상 나를 찌르지 않고 타인의 상처와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상처가 지닌 뜻밖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다. 내 상처는 반드시 나와 닮은 타인의 상처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 당신의 아픔을 내가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내 글을 통해 ‘이 세상에 나와 비슷한 사람, 나와 똑같은 상처를 앓고, 극복하고, 견뎌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독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내 글쓰기의 희망이다. 그것이 내가 내 상처에 말을 거는 순간들을 글로 옮기면서 느낀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힘이었다. 당신의 아픈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그 순간을 위해, 나는 오늘도 쓴다. 내 상처와 꼭 닮은 상처를 지닌 당신과 나는 반드시 내 글을 통해 연결될 것이고, 언젠가 눈부신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