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분야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만큼 오래도록 국민적 사랑을 받은 책도 흔치 않을 것이다. 저자는 진홍섭·황수영과 더불어 미술사학계의 ‘개성삼걸’로 손꼽히는 분으로, 간송 전형필의 제자이자 동반자였고 평생을 박물관인으로 살다 간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 선생이다. 그는 지난 1950~1980년대에 일본·미국·유럽 등에서 한국미술 순회전을 열어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미술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고 국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데 공헌했다. 탁월한 심미안과 문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많은 글을 집필해 일반인들도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쉽고 친숙하게 다가설 징검다리 역할도 했다.
최순우 가옥은 그가 국립중앙박물관장에 부임한 후 1976년부터 별세한 1984년까지 생활한 곳이다. 성북동 도심 한가운데 1930년대 지어진 한옥이다. 정갈한 목가구와 소박한 민예품들로 방치레를 하고, 마당에는 소나무·산사나무·모란·수련을 심어 가꿨다. 사랑방에 용(用)자 미닫이창을 두고 “가장 정갈하고도 조용할뿐더러 황금률이 적용된 쾌적한 비례의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표현했다. 이 집은 일반 개량 한옥에서 느낄 수 없는 특유의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6년 국가등록문화재가 됐다. 1990년대 재개발로 인해 한때 멸실의 위기를 맞았으나, 보존에 뜻을 모은 국민들의 자발적 모금·기부를 통해 2002년 이 집을 시민의 이름으로 사들였다. 이곳에는 ‘시민문화유산 1호’라는 별칭이 붙었다. 1,000명 넘는 자원활동가들이 기부와 봉사활동을 묵묵히 맡으며 음악회·전시·축제 등 다채로운 행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문을 열면 곧장 선생의 친필이 담긴 현판이 보인다.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문을 닫으니 이곳이 깊은 산중’이다. 집안에 주로 머무는 요즘, 그간 우리가 놓치고 있던 주변의 ‘흔한’ 아름다움에 대해 되짚어 보게 하는 글귀다.
/강석훈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