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누구를 위한 '일하는 국회'인가

오현환 논설위원

상법·공정법 등 대기업 견제 입법

與,거대의석으로 밀어붙일까 우려

국제규범과도 멀고 비용부담 막대

기업 떠나고 외국인도 투자 꺼릴것

오현환



옛날 중국에서 종(鐘)을 만들 때 종에 붙은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뿔이 곧게 나고 잘생긴 소의 피를 바르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이런 제사에 쓸 소를 특별히 맡아 기르던 농부도 뒀다고 한다. 이 농부는 특히 소의 뿔이 삐뚤어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했다. 어느 날 하루에도 몇 번씩 소를 살피던 농부가 제사에 쓸 소의 뿔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걸 발견했다. 농부는 이 소의 뿔을 끈으로 칭칭 동여매고 힘껏 잡아당겼다. 이렇게 여러 날 하다 보니 결국 그 소는 뿔이 뽑힌 채 죽고 말았다.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사자성어는 이렇게 해서 나왔다. 조그마한 결점을 고치려다 지나쳐서 오히려 큰 손해를 입는 경우에 자주 활용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우리 속담과도 닮았다.


문재인 정부가 176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배경으로 대기업을 압박하는 법 개정을 몰아붙이는 게 꼭 ‘교각살우’ 격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위한 상법 개정안과 지주회사 자회사 지분 규제 강화, 일감 몰아주기 대상 확대,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와 관련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감사위원을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되 대주주의 지분을 3%로 제한하고,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대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지주회사 규제 강화는 경영권을 행사하려면 상장 자회사 의무보유 지분을 20%에서 30%로 늘리라는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규제 대상 상장 기업의 총수지분율 기준을 30%에서 20%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없어도 검찰이 마음대로 수사해 기소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관련기사



정부·여당은 이 법안들에 대해 재벌이나 대주주의 전횡을 막아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소액주주 보호는커녕 해외 투기 세력에 악용할 소지를 줄 뿐 아니라 막대한 비용부담을 초래하며 글로벌 스탠드와도 동떨어져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의 경우 소액주주보다도 헤지펀드나 경쟁사가 개입해 이사회를 뒤흔들 가능성이 무척 높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일본·독일·미국·호주도 도입했지만 100% 자회사만을 대상으로 한다. 50% 자회사까지 하자는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일감 몰아주기 규제,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규제는 다른 나라에서는 아예 없다. 자회사 보유지분을 더 늘리고 과징금이 증가하면 그만큼 투자가 줄고 일자리만 줄 뿐이다. 대기업 16개사가 자회사 지분율을 10%포인트씩 올린다면 30조원가량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한 규제를 촘촘히 두고 있다. 공시제도가 있고 회계를 잘못하면 형사 처벌하며 경영자에 대한 배임죄도 강력하다. 10대 재벌 중에 형사 처벌을 안 받은 총수가 없을 정도다.

정부 여당은 21대 국회가 열리자 앞다퉈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경영계는 지금 정부·여당이 부동산 관련법처럼 밀어붙이지나 않을까 초긴장 상태다. 여당은 특히 365일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며 ‘일하는 국회법’을 당론 1호로 발의했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기업들의 발목만 잡는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이런 법안들이 통과된다면 안 그래도 중국의 거센 추격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고통을 겪는 기업들의 등에 칼을 꽂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기업들은 한국을 떠나고 해외 기업들은 한국 투자를 기피할 것이다. 세계시장에서 무한 경쟁을 펼치는 우리 기업들의 앞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막대한 비용 부담을 초래해놓고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대기업에 손을 내밀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정부·여당은 교각살우의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오현환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