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암(眉巖) 유희춘(1513~1577년)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으며 ‘미암일기’를 비롯한 저서와 기록을 남긴 호남사림의 대표 인물이다. 전남 담양군 대덕면 장동마을 안쪽으로 한참을 걷다 보면 미암 선생의 종택과 사당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앞으로는 단아한 석조건물이 연못 위 수목들과 어우러져 운치를 뽐내고 있다. 푸른색을 띠는 청석(靑石)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돌집, ‘모현관(慕賢館)’이다.
이곳은 지난 1957년 한국전쟁 이후의 혼란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미암 선생의 유물을 보호하기 위해 후손들과 지인들이 수장고 용도로 만든 ‘건축가 없는 건축’이다. 훗날 이곳에 보관됐던 ‘유희춘 미암일기 및 미암집목판’이 보물 제260호로 지정된 것을 감안하면 보물창고였던 셈이다.
모현관은 연못 위에 흙을 쌓아 언덕을 만들어 세운 물 위의 돌집이다. 서지(종이)류 유물을 습기가 많은 연못 한복판에 보관하는 것이 현대적 보존 개념에서는 위험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유물 관리에 가장 취약했던 화재를 우려해 연못 위에 건축 부지를 마련한 것은 매우 흥미롭고 대단한 발상이다. 건축계획적 관점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전문적인 수장시설을 만들어 운영했다는 것만으로도 역사적·사회적·건축사적 가치가 크다.
이러한 연유로 지난해 근현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제769호로 등록됐다. 이곳에 보관 중이던 미암 선생의 책들은 2013년에 신축한 ‘미암박물관’으로 옮겨가 있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박물관섬(Museumsinsel)’에 가면 박물관 건물들 사이로 슈프레강이 유유히 흐른다. 그곳처럼 현재는 비어 있는 담양 모현관도 앞으로 ‘미암 유희춘의 보물창고’에 걸맞게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이용준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