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디지털화폐(CBDC)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대면 디지털결제 규모가 급증하면서 CBDC의 필요성과 신뢰성이 높아진데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측면에서도 CBDC 발행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12일(현지시간)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이날 국제통화기금(IMF) 온라인 연례 총회에서 “디지털유로 발행을 매우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라가르드 총리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우리가 일하고, 거래하고, 지불하는 방법을 포함해 많은 구조적 변화를 불러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로 유럽에서는 디지털결제가 급증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현금이 왕이던 독일·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에서도 디지털결제가 크게 늘었다”며 “올 2월부터 6월까지 전자상거래는 거래량과 규모 면에서 거의 5분의1 증가했다”고 밝혔다.
라가르드 총재의 이날 발언으로 유럽이 디지털화폐 도입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진단이 나온다. 라가르드 총재는 “디지털결제에 훨씬 많은 신뢰가 생겼고 상당한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ECB는 이달 초 디지털유로 도입에 대한 공개 논의를 공식화했으며 내년 중에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일정을 공개했다. 또 지난 9월에는 디지털유로의 상표등록도 출원한 바 있다.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 스웨덴의 경우 중앙은행인 릭스방크가 2월 세계 최초로 CBDC인 ‘e크로나’ 시범 테스트를 실시, 연내 완료 후 내년 중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위안화 국제화’를 목표로 한 중국은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디지털위안화 공개실험을 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광둥성 선전시가 12일부터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함께 시민 5만명에게 1인당 200위안(약 3만4,000원)의 디지털위안화를 지급해 이들이 선전 뤄후구 내 3,389개의 실제 상점에서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중국은 4월부터 쑤저우·선전·청두·슝안신구 등 4개 지구에서 디지털위안화를 시범 운용하기도 했다.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더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경우 정부가 계속 돈을 풀어도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CBDC를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디지털화폐가 도입되면 사람들이 마이너스 금리를 이유로 현금을 인출해 집 안에 쌓아두지 못하게 되고 돈이 흘러 생산적인 투자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일본은 7월 각료회의를 통과한 ‘2020년도 경제제정운영개혁 기본방향’에 CBDC 실증실험 검토, 실시 문구를 새롭게 추가했으며 최근에는 개념증명(PoC) 1단계 시행을 목표로 개념적 연구를 넘어선 범용 CBDC 실험 수행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은행도 최근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 여부에 관심을 높이며 CBDC 가상유통 등의 계획을 수립해놓고 있다. 당장 CBDC를 발행하지는 않겠지만 대내외 지급결제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만큼 CBDC 연구에 속도를 높여 대비하겠다는 취지다. 한은은 올 초 금융결제국 내에 디지털화폐연구팀과 기술반을 출범시키고 전담팀이 현재 2단계 사업인 ‘CBDC 업무 프로세스 분석 및 외부 컨설팅’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3단계인 ‘CBDC 파일럿 시스템 구축 및 테스트’에 돌입해 가상환경에서 디지털화폐의 시험유통을 진행할 예정이다. 시험유통은 한은이 발행과 환수를 맡고 민간이 유통을 담당하면서 실제 현금이 유통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화폐 보유 현황과 거래 내역 등을 기록하는 CBDC 원장은 블록체인 방식으로 관리한다. 한은은 내년 말까지 제한된 환경에서 디지털화폐를 유통하면서 시스템 정상 작동 여부와 장단점 등을 분석할 방침이다. /노희영·조지원기자 nevermin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