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36.3%, SK하이닉스 31.3%, 기아자동차 30.4%, LG화학 28.7%….’
감사위원을 분리선임하고 이때 대주주의 의결권은 3%로 제한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실현될 수 있는 외국인 의결권이다. 한국산업연합포럼이 13일 이들 4개 기업을 비롯해 네이버·LG생활건강·현대모비스·삼성화재 등 시가총액 상위 기업 15곳을 조사한 결과 외국인 주주들이 ‘통상적인’ 수준으로 헤지펀드의 감사위원 추천에 동조하면 13개 기업에서 이들의 의결권 비중이 25%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적인 수준이란 지난해 현대자동차 주주총회에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사외이사 추천에 실제 동조한 외국인 주주 비율(53.1%)이다. 25%는 감사위원이 실제 선임될 수 있는 기준선으로 꼽혀 국내 대표 기업들에서 ‘아군 작전회의에 적장이 참석하는’ 상황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감사위원 선임 등 주주총회 보통결의 요건은 발행주식 총수의 25%와 출석 주식 과반의 찬성이다. 문제는 ‘15곳 중 13곳’마저도 국내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들 중 단 한 곳도 해외 헤지펀드의 제안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보수적인’ 계산에 근거한 결과라는 점이다.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 중 12%만 헤지펀드 제안에 동조해도 15개 기업 모두에서 외국인이 의결권의 25% 이상을 확보하게 된다.
만약 국내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들이 외국인 주주와 같은 53.1%의 비율로 헤지펀드 쪽에 결집하면 15개 기업 모두에서 전체 의결권의 50% 이상을 외국인들이 확보하게 된다.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고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기관투자가들은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모든 기업을 들여다볼 수 없어 주로 해외 헤지펀드에 동조하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을 따르는 실정이다.
이날 포럼에서 발표를 맡은 송원근 연세대 객원교수는 “지난 2019년 당시 엘리엇 제안에 외국인 주주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였음에도 53.1%나 결집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3%룰이 시행되면 대주주의 의결권이 3%에 묶이는 만큼 외국인 지분은 반사이익을 보게 돼 외국계 헤지펀드 추천 인사가 국내 대표 기업 이사회에 진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현대차 주총 당시 엘리엇은 사외이사 후보 3명을 추천했다. 그중 한 사람이 캐나다 수소 업체 발라드파워시스템 회장이었는데 이후 이 회사의 대주주가 중국 웨이차이파워인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차가 20여년간 공을 들인 미래 먹거리 수소 기술이 중국 경쟁업체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갈 뻔했던 것이다.
한국산업연합포럼이 분석한 15개 기업은 글로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해외 경쟁기업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 대표 기업들이다. 그야말로 ‘졸면 죽는’ 해외시장에서 치열한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 안에서, 그것도 경영을 감시하는 감사위원에 외국계 헤지펀드가 추천하는 인사들이 진입할 길을 정부 여당이 열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3%룰은 한국 산업 경쟁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치권에서 단순히 ‘대주주 리스크’를 해소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경제단체들은 여당에 끝까지 ‘독소조항’ 해소를 읍소할 계획이다. 14일엔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더불어민주당 ‘공정경제 3법’ 태스크포스(TF) 소속 의원들과 간담회를 연다. 손경식 경총 회장과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등이 유동수 TF 위원장 등과 만날 예정이다. 15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이 주관하는 정책간담회에 삼성경제연구소,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SK경영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등 4대 그룹 연구소에서 참석한다. 그야말로 재계가 총력전을 펼치는 형국이다.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은 “공정경제 3법을 기업인들은 기업규제 3법을 넘어 ‘기업장악법’이라고도 부르는 실정”이라며 “선한 의지가 악한 결과를 내는 상황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