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의 중대성과 치밀성, 피해자 수와 피해 정도, 범행으로 인한 사회적 해악, 피고인의 태도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을 장기간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이 1심에서 징역 40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그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중 범죄단체조직죄가 처음으로 인정된 사례인 만큼 의미 있는 판결로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이현우 부장판사)는 26일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과 범죄단체 조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 씨에게 이와 같이 선고했다. 신상 정보 공개·고지 10년, 취업제한 10년, 위치 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30년, 1억여 원의 추징 명령도 내렸다. 전직 거제시청 공무원 천 모(29) 씨는 징역 15년, 전직 공익근무요원 강 모(24) 씨는 징역 13년을 선고받았다. 박사방 유료 회원인 임 모 씨와 장 모 씨에게는 각각 징역 8년과 7년, ‘태평양’ 이 모(16) 군에게는 소년범 최고 형량인 장기 10년, 단기 5년이 선고됐다.
재판부가 미성년자를 포함한 피고인 모두에게 중형을 내린 것은 이들의 범죄단체 조직·가입 혐의를 유죄로 봤기 때문이다. 앞서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조 씨에게 무기징역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준하는 중형이 선고되기 위해서는 조 씨의 범죄단체 조직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야 했다. 재판부는 “박사방 조직은 다수 구성원으로 이뤄진 집단으로 조주빈과 그 공범이 아동·청소년 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이를 배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구성원들이 오로지 그 범행을 목적으로만 구성한 조직”이라며 “구성원들은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구성원들이 참여한 텔레그램 대화방들은 모두 조주빈이 만든 성 착취물을 유포한다는 점과 참여자들이 조주빈을 추종하며 지시를 따른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했다”고 설명했다. 범죄단체조직죄의 구성 요건인 △다수의 구성원 △공동의 목적 △최소한의 통솔 체계 등이 충족된다고 판단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박사방 일당은 “범죄 집단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조주빈이 주도적으로 혼자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등의 취지로 주장해왔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사방 사건은 지난해 9월 피해자의 신고로 수사가 본격화됐다. 검찰은 올 4월 아청법 위반 등 총 14개 혐의를 적용해 조 씨를 재판에 넘겼다. 그 뒤에는 조 씨와 박사방 공범들을 특정해 범죄단체 조직·가입 혐의로 재차 기소했다. 앞서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올 9월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 상습범에 대해 최대 29년 3개월의 형량을 권고하는 내용을 담은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안을 만들었다.
조주빈과 공범들의 1심 판결이 나온 직후 여성 단체들은 디지털 성폭력 근절과 재판 중 피해자 보호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텔레그램 성 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잡히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조주빈의 말은 오늘로 틀린 것이 됐다”며 “텔레그램 성 착취 끝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여성인권위원회의 조은호 변호사는 “수사기관과 법원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법적 절차에서 피해자의 지위와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