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온갖 우려 속에 수능시험을 본 올해 응시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일생일대의 시험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긴장 백배의 순간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걱정으로 점심조차 마음 놓고 먹지 못했을 응시생들을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아려온다. 시험 시간에 늦을까 발을 동동 구르는 학생들을 택배용 오토바이로 태워 주신 분들, 버스를 놓쳐 사색이 된 수험생을 경찰 오토바이로 에스코트 해 준 경찰관, 방역 때문에 수험생들을 향해 응원 구호도 외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조용히 마음으로만 응원해야 했던 모든 분들. 무엇보다도 온갖 역경을 딛고 무사히 시험을 치러낸 응시생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보내고 싶다. 시험장 앞에서 딸을 내려주며 꼭 껴안아 주는 한 아버지의 사진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코로나로 모든 사회적 관계가 자꾸만 단절돼 가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따스함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됐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오래전 내가 수능과 본 고사를 보던 시절 나 또한 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수능 날 손목시계를 깜빡하고 집에 두고 온 나를 위해 감독관 선생님은 자신의 시계를 망설임 없이 선뜻 풀어 나에게 빌려 주었고,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너무 눈부셔 시험지가 잘 보이지 않자 흰 종이를 창문에 붙일 수 있게 허락해 주기도 했다. 본고사 면접을 기다릴 때는 날씨가 무척 추웠는데, 건물 밖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를 보신 한 교수님이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와 기다리라며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따뜻한 차와 담요를 제공해 주셨다. 따스한 교수님의 미소, 너무도 달콤했던 핫초코의 맛, 처음 보는 낯선 수험생에게 덜컥 연구실 문을 열어주신 그 환대의 마음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던 순간이었다. 감염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니 공식적인 만남의 자리에서도 좀처럼 마스크를 벗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경우에도 서로 마스크를 벗지 않다 보니, 몇 번을 만나도 얼굴 전체가 아닌 마스크를 쓴 ‘두 눈’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간절히 보고 싶은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얼마 전 나를 유난히 따르던 한 후배에게 이런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작가님, 너무 보고 싶어요. 코로나가 잦아들면 뵐 수 있겠지 하며 참고 또 참았는데, 또 언제 뵐 수 있을지 요원하기만 하네요.” 재택근무를 주로 하다 보니 더욱 외출빈도가 낮아지고 사람 만나는 일이 줄어든다는 후배의 메시지 속에는 짙은 외로움이 배어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이 점점 사라지다 보니 애정과 호감을 표현하는 작은 몸짓조차 망설이게 된다. 악수를 하려다가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게 되고, 포옹을 하려다가 멈칫하게 된다. 다음에, 모든 상황이 좋아지면, 그때 내 못 말리는 다정함을 회복해야지, 이런 생각을 자꾸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움츠러든다. 나는 얼마 전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과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완독하는 온라인 강연을 진행했는데, 처음으로 사람들의 이름을 마치 출석 부르듯 하나하나 불러보았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화면 속에 비친 얼굴들을 하나하나 세심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온라인 강연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되니 정말 오랜만에 사람들의 표정을 마음 편히 바라보게 된다. 이렇듯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소통을 꿈꾸는 사람들’은 더 많아진 것만 같다. 시험 걱정, 감염 걱정, 그야말로 온갖 걱정을 머리에 잔뜩 이고 시험을 보러 들어가는 딸을 두 팔 벌려 꼭 안아주는 한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눈물이 쏟아진 것은 바로 나 또한 누군가를 따스하게 꼭 안아주고 싶은 소망을 너무 오래 억눌렀기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를 꼭 안아드린 지 참 오래됐고, 간 쓸개도 빼줄 것처럼 친했던 모든 사람들도 도대체 얼굴을 본 지가 언제인지 한참 헤아려보게 된다. 코로나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들의 배려와 온정 속에서 무사히 치러진 수능시험은 나에게 일깨워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따스함, 다정함, 친밀함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는 아직 더 많은 따스함, 더 깊은 친밀함, 더 짙은 연대감이 필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