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후유증으로 폐의 90% 이상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멕시코 거주 재외국민 김충영(55) 씨가 에어 앰뷸런스(환자 전용 수송기)까지 동원한 가족의 적극적 노력 덕분에 서울아산병원에서 폐 이식수술을 받고 8일 퇴원했다.
김 씨는 멕시코에서 남편 정갑환 씨와 자영업을 하다 지난 6월 코로나19로 확진돼 멕시코시티 ABC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3일 만에 폐렴이 악화돼 인공호흡기 신세를 졌고 패혈성 쇼크 진단도 받았다. 후유증으로 폐섬유증까지 발생해 폐기능을 거의 잃었다.
가족들은 김 씨를 살려보려고 7월 24일 에어 앰뷸런스 편으로 멕시코에서 유일하게 폐 이식에 성공한 크리스터스 무구에르사 병원으로 옮겼다. 이후 인공호흡기와 인공심폐기 에크모로 연명하면서 폐 이식을 기다렸다. 하지만 멕시코는 폐 이식 경험이 많지 않고 장기 기증이 드물다. 의료진은 “이식수술이 (사실상) 불가능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사실상 ‘사형선고’를 했다.
아들 정재준(34)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 의료진에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폐 이식이 꼭 필요합니다”라는 e메일을 보냈다. 이 병원 폐이식팀의 수술 성적은 세계적 수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술한 환자 130명 이상을 분석했더니 평균 생존율이 1년 78%, 3년 67%, 5년 62%였다.
폐이식팀은 현지 의료진과 연락해 김 씨의 상태를 파악했다. 김 씨는 의식도 없어 폐 이식 진행 가능성과 수술 후 회복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김 씨를 안전하게 한국으로 이송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에크모 전문의 등이 동승한 에어 앰뷸런스로 환자를 이송하겠다는 김 씨 가족의 적극적 의지와 무구에르사 병원, 멕시코 주재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결국 8월 초 폐 이식 진행을 결정했다.
김 씨는 8월 8일 인공호흡기와 에크모에 의지한 상태로 멕시코 몬테레이공항을 떠나 캐나다 벤쿠버공항,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공항, 러시아 캄차카공항을 거쳐 9일 오전 4시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24시간 동안 1만 2,000㎞를 날아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그는 내과계 중환자실로 입원해 폐 이식 대기자로 등록됐다. 김 씨 가족이 한국 국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외국 국적자는 연속해서 1년 이상 국내 거주해야 이식 대기자로 등록할 수 있다.
김 씨는 장기간 폐렴·패혈증으로 항생제 치료와 수혈을 받아 몇 차례 나온 뇌사자의 폐에 거부반응을 보였다. 폐 이식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걱정 속에서 9월 11일 이식할 수 있는 뇌사자 폐가 나왔다. 김 씨는 10시간이 넘는 대수술 끝에 성공적으로 폐 이식수술을 받았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등 폐 기능이 예상만큼 빨리 회복되지 않았지만 적절한 치료로 고비를 넘기고 재활 치료를 받았다.
김 씨는 “멕시코에서 코로나19 완치 이후 폐렴과 패혈증·폐섬유증까지 생겨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가족과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으로 수술을 받고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감격을 느낀다. 가족과 의료진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돼 이날 퇴원했다. 아들 재준 씨는 “한 통의 e메일에 하나 되어 움직여준 폐이식팀의 따뜻한 마음이 캄캄했던 우리 가족의 앞날을 다시 밝게 만들었다.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니 꿈만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수술을 집도한 박승일 흉부외과 교수는 “폐 이식은 간·심장 등에 비해 이식 후 생존율이 낮아 수술을 망설였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말기 폐부전 환자들도 희망을 가져도 된다”고 강조했다. 홍상범 호흡기내과 교수는 “폐이식팀의 팀워크와 유기적인 다학제 시스템, 질 높은 통합 관리로 생존율을 높여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