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대한민국 법치는 죽었다

정상범 논설위원

총장 징계로 검찰 독립성 무너져

법이 권력의 통치수단으로 전락

편가르기 공포 정치시대 우려도

‘법의 지배’ 헌법정신 되살릴 때

정상범



한겨울 칼바람과 함께 전해진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소식에 섬뜩함을 느꼈다는 이들이 많다. 정권의 눈 밖에 나면 대한민국 핵심 권력기관의 수장도 몰아내는 장면은 모두에게 공포심을 불어 넣기에 충분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이로써 정권의 대리인인 법무부 장관이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징계한 최악의 선례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언제든지 검찰총장이 쫓겨나는 검찰 흑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만천하에 던진 셈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약 1년간 이어졌던 검찰 잔혹사는 이른바 판사 사찰 등 죄목도 그렇거니와 정당한 방어권도 보장하지 않는 등 절차상 숱한 문제점을 남겼다. 윤 총장 측 변호인단은 “왜 그렇게까지 무리하면서 징계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지금이 왕조시대도 아니지 않느냐는 항변도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그렇게 탈탈 털었는데 2개월 징계에 그쳤느냐며 ‘인디언 기우제’ 조사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다수 국민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검찰총장에게 이런 망신까지 주면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이게 정권이 원하는 검찰 개혁인가. 아니면 비정상의 정상화인가.


초유의 막장극을 지켜보면서 내년에 출범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오죽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검찰총장마저 막무가내로 처벌했으니 당장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오를 7,000명 안팎의 고위 공직자들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투서와 고발이 난무하고 살생부가 거론되면서 무소불위의 힘으로 찍어누를 우려가 크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 징계위 와중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라면서도 시종일관 검찰 견제를 역설했다. 공수처가 출범하면 권력이 아니라 검찰 견제가 주요 목표일 것이라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또 “정권의 권력형 비리에 사정의 칼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인데 어떻게 독재와 연결시킬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공수처가 검사들이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 1호로 삼아 권력형 비리를 철저히 파헤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면 된다. 그래서 ‘공수처=집권세력 노후 보장 보험’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이 허언에 머무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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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정치 성향을 떠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위기를 얘기하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모두에게 공정해야 할 법이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낱 수단으로 전락하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합법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일찍이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려면 충성과 두려움 가운데 택일을 강요해야 한다고 갈파했다. 그러면서 군주는 미움을 받는 일을 타인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권에 반기를 든 검찰총장에게 본때를 보인 것은 마키아벨리식 공포 통치의 시작일 뿐이다. 권력의 언어가 국민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고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현상도 새삼스럽지 않다. 다주택자를 악으로 몰아 세금 폭탄을 때리고 기업인을 준범죄인 취급하며 가르치려 드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오직 지지 세력만을 바라보는 편 가르기 정치의 폐해다.

현 정부는 도덕적 우월성과 개혁을 명분으로 삼아 무제한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회에서 야당과의 협의도 없이 정상적인 절차를 건너뛰고 입법 폭주를 감행하고도 법대로 했을 뿐이라고 둘러댄다. 바야흐로 법이 통치자의 의지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법치주의가 왜곡되고 조롱당하는 시대다. 이럴수록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법의 지배(rule of law)’다. 권력자의 자의적인 의사에 따른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니라 누구나 법의 최고 규범인 헌법 정신에 따라 보호받아야 한다. 법의 지배가 무참히 무너진 2020년 겨울, 검찰총장 징계보다 그 이후가 더 걱정되는 세상이다. ssang@sedaily.com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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