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금융불안·재정중독·조세정의 저해…국가경제 흔드는 ‘정치권 선거병’

기업 출연 압박…서민금융 확대

산재법 형량 강화 등 입법 봇물

표심잡기에 시장경제질서 훼손

‘코로나 이익공유제’ 검토를 지시한 지난 1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권욱기자‘코로나 이익공유제’ 검토를 지시한 지난 1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권욱기자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표심만을 겨냥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포퓰리즘 선거로 치달아 국가 경제마저 흔들리고 있다. 정치권이 ‘선거병’에 빠져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치유한다는 명분으로 내놓은 이익공유제 제안부터 노동계의 표심을 겨냥한 법안 통과 예고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문제는 이 같은 정책 등이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롯이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는 점이다.


이낙연 대표가 제안한 이익 공유제는 표면적으로 코로나19에 따른 피해를 본 업종과 기업·자영업자 등을 지원하기 위해 반사 이익을 얻은 업종과 기업 등이 지원하자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구개발(R&D)투자에 집중해야 하는 기업을 지원하기보다는 그동안 기업이 얻은 파이를 사회 전체가 공유하자는 것과 동일하다.

기업에 대한 처벌 강화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거대 여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이어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기업의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기업 경쟁력만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양형위 결정이) 여전히 사망사고에도 집행유예 선고가 될 수 있는 등 미흡한 점도 지적된다”고 말했다. 결국 산안법 개정안에 대한 양형위의 결정이 미흡한 만큼 양형위의 추가적인 양형 기준 상향 조정을 요구한 것이다.

노동계의 표심 공략을 위한 거여의 행보도 결국 국가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지적된다. 민주당은 이날 필수노동자 태스크포스(TF)에서 추진해온 필수노동자법·플랫폼종사자법·가사근로자법 등 이른바 ‘근로자 3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임지훈·구경우·박진용기자 jhlim@sedaily.com

“선거만 이기면 끝” 고용 옥죄고 재정중독·조세정의마저 무너뜨려

巨與, 조세원칙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익공유제’ 밀어붙여

與·野· ‘재정중독’ 빠져…건전성 입에 올리면 배신자 낙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범여권이 4월 보궐선거 일정에 맞춰 △근로자 3법 △특별재난연대세 △서민금융 추가 확대 등의 경제정책 카드를 잇따라 꺼내 들고 있다. 서울·부산시장에서 밀릴 경우 내년 대통령 선거까지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위기의식 속에 여당과 함께 야당 역시 ‘표심’만을 바라본 선심성 정책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선거만 이기면 끝’이라는 식의 정책 제안에 결국 ‘정치가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 안정도 뒷전으로 밀려




문제는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그치지 않고 시장 안정까지 해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는 점이다. 공매도제도가 대표적이다. 여야와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공매도를 올해 3월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금융위가 올해 공매도를 재개하겠다고 발표하자 “금지 조치를 연장해야 한다”며 태도를 바꿨다. 공매도제도가 시행된 후 주가가 하락하면 화살이 정치권에 올 것을 우려해서다. 여당의 한 의원은 “4월 선거가 코앞인데 당장 3월에 공매도를 재개하면 빚을 얻어 투자한 사람들의 손실이 커지고, 이게 고스란히 표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당내에서도 3월 공매도 재개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고 전했다. 공매도 금지 연장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은 이를 정치 공학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여야가 2월 임시국회에서 금융사들의 이익을 동원해 서민 대출을 확대하는 법안을 논의하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 기준 우리 경제(명목 GDP) 대비 가계 대출 규모는 100%를 넘어섰다. 여기에 777조 원에 이르는 빚을 가진 자영업자 가운데 적자 가구만 20.3%에 이른다. 올 3월 자영업자 등에 원금·이자 상환을 유예하는 조치가 끝나면 빚을 못 갚는 유동성 위험 가구 비율이 올 2월 2.3%에서 내년 12월 10%대까지 수직 상승할 위기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선거를 앞두고 일단 빚부터 내줄 기세다.

이익공유제도, 계층 갈등 불씨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국난극복 K-뉴딜위원회 국난극복본부 점검회의에서 김태년(오른쪽) 원내대표(오른쪽), 홍익표 정책위의장과 논의하고 있다./연합뉴스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국난극복 K-뉴딜위원회 국난극복본부 점검회의에서 김태년(오른쪽) 원내대표(오른쪽), 홍익표 정책위의장과 논의하고 있다./연합뉴스


더욱이 민주당은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이익공유제’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피해가 덜한 기업·가계가 피해가 심한 업종·계층에게 이익을 나눠주자는 것이다. 정의당은 심지어 초고소득자와 기업에 한시적으로 ‘특별재난연대세’를 부과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직전 연도보다 종합소득이 증가한 개인에게 5%의 세금을 추가로 걷어 피해 계층에게 나눠주자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넓은 세원, 낮은 세율, 보편 과세’라는 조세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상장사 685개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4.8%에 불과하다. 특히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자보상배율 1 미만)이 전년보다 5.1%포인트 뛴 42.4%로 치솟은 게 기업들의 현실이다. 특별재난세는 투자와 고용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의 영업이익을 몽땅 세금으로 추징하자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다음 달 금융사의 이익을 출연받아 서민대출을 더 늘리는 법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또 특별재난세는 ‘집 없는 직장인’의 소득으로 ‘집 있는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문제로, 계층 갈등의 불씨로 번질 리스크도 안고 있다. 전년보다 소득이 늘어난 것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특정 경제주체의 이익을 강제로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런 법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자리 위축 우려 ‘근로자 3법'
또 민주당은 14일 정부와 ‘한국판 뉴딜 당정 추친본부 회의’을 열고 이른바 ‘근로자 3법(가사근로자법·플랫폼종사자법·필수노동자법)’을 2월 국회에서 처리키로 했다. 취약 업종의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인데 법안의 처리시기를 2월로 못 밖으면서 선거를 앞두고 노동계의 표심을 위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문제는 이 법을 꺼낸 시기다. 고용시장은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취업자 수가 전년보다 약 22만 명 줄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을 기록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은 하나같이 일자리를 위축시키는 내용이다.

가사도우미에게 근로시간·연차휴가·퇴직금 등을 보장하는 법이 대표적이다. 가사근로자의 고용은 대부분 맞벌이 부부에 의해 이뤄지고 근로는 대부분 육아에 맞춘 시간제 형태다. 하지만 법이 통과되면 직장인의 부담이 높아져 이들이 고용을 꺼릴 가능성이 크다. 또 플랫폼종사자법은 배달기사와 대리기사 등 개인사업자에게 ‘노사관계’에 준하는 노동법을 적용하는 내용이다. 플랫폼사업자들의 비용 증가로 고용이 줄고 산업생태계마저 위축될 수 있다. 재난 시 국가와 지자체의 보호를 받는 필수노동자법도 대상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강화된 노동규제가 코로나 사태 이후 일자리 회복을 막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 이후 생산이 급격히 확대되면 노동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어줘야 고용이 늘어나는데 지금은 반대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치권은 '재정중독' 지출만 생각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 대표는 최근 자산이 늘어난 기업과 계층의 이익을 공유하는 ‘코로나 이익공유제’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고, 김 위원장도 당 소속 의원들에게 ‘공동선 자본주의’ 보고서를 배포했다./연합뉴스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 대표는 최근 자산이 늘어난 기업과 계층의 이익을 공유하는 ‘코로나 이익공유제’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고, 김 위원장도 당 소속 의원들에게 ‘공동선 자본주의’ 보고서를 배포했다./연합뉴스


더 큰 우려는 정치권이 돌이킬 수 없는 ‘재정 중독’ 상태에 빠진 점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3차 재난지원금이 집행도 되기 전에 “충분하지 않다”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거론하고 나섰다. 2월 국회에서 논의될 서민금융 확대 정책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집합 제한 조치로 자영업자들이 손실을 보면 이를 재정으로 보상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전국 500만 명의 자영업자에게 100만 원씩만 보상해도 5조 원에 달하는 규모다. 2016년 627조 원이었던 국가 부채가 올해 954조 원까지 치솟는 현실은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 후순위로 밀려난 지 오래다. 오히려 ‘재정 건전성’을 말하면 배신자로 낙인찍힐 분위기다.

가계·기업·자영업 부채 폭탄 터질 수도


1535A03 급증세의 국가채무(35판)


금융 안정과 조세 정의를 외면하고 재정 중독에 빠진 정치권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보궐선거가 끝나면 대선 국면이 시작되고 내년 대선까지 이 같은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가 빠르게 반등하지 않으면 가계·기업·자영업에서 동시에 부채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양 교수는 “만기 연장 유예로 부채의 질마저 나빠진 상태에서 경기가 빠르게 반등하지 않거나 소득을 채울 일자리가 늘지 않으면 실물 경제의 위험이 금융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며 “이를 받아낼 정부마저 빚만 늘리고 있어 당장 관리를 하지 않으면 향후 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경우·박진용 기자 bluesquare@sedaily.com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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