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연합노동조합이 29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파업 규모는 전체 택배 기사의 10%가량으로 설 연휴 택배 배송에 일정 부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택배 노조가 노사 합의를 6일 만에 뒤집고 파업에 나서는 이유는 분류 작업 인력 충원이지만 과로사의 근본 원인은 택배 업계의 계약 형태에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임금과 근로시간이 명확히 정해진 근로계약으로 전환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조는 임금 삭감을, 택배사는 비용 증가를 우려하며 과로사를 조장하는 구조에는 손도 못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택배노조는 27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9일부터 무기한 전면 총파업에 돌입한다”며 “지난 20∼21일 양일간 진행한 택배노조 총파업 조합원 찬반 투표 결과 전체 조합원 중 97%의 투표율과 91% 찬성률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택배사 측이 ‘사회적 합의’를 어기고 택배 분류 인력을 제대로 충원하지 않아 과로사 등의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이에 따라 CJ대한통운·롯데택배·한진택배 등 민간 택배사와 우체국본부 조합원을 합쳐 5,450명가량의 조합원이 파업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기준 전국 택배 기사 약 5만 4,000명의 10%에 해당한다. 이 중 우체국본부 조합원 2,650명은 분류 작업이 안 됐을 경우 배송 작업을 거부하는 식으로 파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택배노조는 단체협약 체결을 파업 철회 조건으로 내걸었다. 택배사들이 특수근로형태종사자 신분인 택배 기사 노조를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고 노사가 분류 인력 충원 문제를 직접 협의하자는 것이다. 이날 김태완 택배노조 위원장은 “현장에서는 바뀐 것이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며 “재벌 택배사가 국민과 택배 노동자를 기만하고 우롱한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사들이 추가 분류 인력을 채용하지 않겠다며 각 대리점에 공문·지침을 발송했다’는 택배 노조의 주장에 대해 서울경제가 27일 CJ대한통운·한진택배·롯데글로벌로지스에 확인한 결과 세 회사 모두 “그런 공문을 내린 적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택배 기사의 과로사 문제가 논란이 되자 분류 인력으로 CJ대한통운은 4,000명, 한진·롯데는 1,0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CJ·한진·롯데는 각각 3,500명, 300명, 980명 정도의 인력을 채용했다고 밝혔다.
노사의 주장이 ‘진실 게임’ 양상을 띠고 있지만 택배 논란의 핵심이 ‘분류 인력 증원’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택배 노조의 29일 파업 이유 역시 ‘지난해 약속한 인원 이상의 분류 인력을 뽑으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택배 배송 과정은 터미널에 도착한 택배를 지역별로 분류한 뒤 택배차에 싣고 배송지로 나르는 3단계로 구성된다. 3단계 모두 택배 기사의 업무였는데 물류량이 늘면서 분류 작업이 전체 업무 시간 중 3분의 1 이상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노동계는 분류 작업이 택배 기사 과로사의 원인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분류 작업이 분리된다고 해서 택배 기사의 과로가 해결될지는 의문이다. 택배 계약은 임금과 근로시간이 정해지지 않고 택배를 나를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위·수탁 계약이다. 분류 작업이 제외된 후 택배 기사가 그 시간 동안 택배를 더 배송하면 돈을 더 많이 벌어갈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과로의 직접적 원인인 ‘과도한 업무 시간’이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택배 기사가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게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분류 인력의 재원 문제를 두고 택배사·대리점주가 소극적 태도를 보인 것도 인력 비용을 택배사·대리점주가 모두 부담하면 과로사는 해결하지 못하고 택배 기사의 보수만 늘어나는 결과만 생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택배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로사 해결과 분류 인력 재원 문제는 모두 택배 업계의 계약 방식과 얽혀 있어 전체 구조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과로사를 해결하기 위해 택배 기사의 계약 방식을 근로계약으로 전환하고 택배 기사를 더 뽑으면 되지만 노사 모두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근로계약서에는 정해진 임금과 근로시간이 명시되고 주 52시간 근로제 등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택배 기사의 임금은 줄어든다. CJ대한통운의 경우 월 5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지만 근로계약이 원칙인 쿠팡의 경우는 인센티브를 더해도 연 4,800만 원을 넘기 힘들다. 택배사와 대리점주는 계약 변경 후 노무관리에 드는 추가 비용을 꺼린다. 근로계약 체결 이후에는 연장근로수당·연차휴가·퇴직급여 등의 부수적 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세종=변재현 기자 humbleness@sedaily.com, 방진혁 기자 bread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