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58세 후배 직장인이 봉급의 30%가 깎였다고 말했다. 월급 자체도 본래 적었다고 한다. 그는 짐짓 무심한 듯 말했지만 저항할 수 없는 운명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패배감, 모멸과 수치를 숨기고 있음을 필자는 안다.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마침내 그 날이 왔을 뿐이다. ‘목숨을 부지한다’라는 것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그날이.
이 시대는 청년들에게 더 벅차다. 몇 년 전부터 한국 경제가 심각한 기저 질환 상태에 빠진 이래 청년 세대를 관통하는 정서는 희망보다는 절망이었다. 그들에게 절망은 요컨대 ‘점점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 사회의 구성원다운 구성원이 되지 못하고 잉여 인간이 되어간다. 어떤 방법을 써도 현실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이 절망의 근원이다.
‘꿈을 좇으라’고 말들 한다. 그러나 태어나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꿈을 좇아 자신을 다그치면서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고단한 일상을 이어왔던가. 이제 그 꿈이 현실이 되어야 할 시간이 됐건만 신기루처럼 그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꿈이 없어서, 노력을 덜해서, 못나서가 아니다. 1932년 올더스 헉슬리가 예언했던 ‘멋진 신세계’에서 ‘소마’를 먹고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 더 가까이 왔을 뿐이다.
고용 통계는 만 15세 이상 인구의 매월 15일이 속한 1주간의 활동 상황을 파악해 △취업자 △실업자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한다. 비경제활동인구는 ‘쉬었음’과 ‘구직단념자’를 포함한다. 이 인력은 실업자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통계청은 1월 중 ‘쉬었음’ 인구가 37만 9,000명(16.2%) 증가한 271만 5,000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후 가장 큰 수치다. 구직단념자는 77만 5,000명으로 전년보다 23만 3,000명 늘었고 실업자 수도 사상 처음으로 150만 명을 넘었다. 연령대로 보면 15~29세 고용률이 가장 크게 줄었다. 역시 청년층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는 2차 세계대전 패전 후의 일본을 배경으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썼다. 주인공 요조의 자살이 소설의 결말이지만 요조가 목숨을 부지할 경제력이 없어서 자살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여자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는 어떤 분위기’가 있어서 밥을 벌어먹지 못하더라도 언제나 ‘기둥서방’은 될 수 있었다. 그것도 능력인데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청년들은 대개 그런 능력도 없다.
섣부른 위로는 않겠다. 가수 신해철은 “하지만 그냥 가보는 거야, 그냥 가보는 거야”라고 했다. 삶에 의미가 있나 없나를 따지지 말자. 부디 끝까지 버티기를 바랄 뿐이다. 절망의 끝이 보일 때까지! 2020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시인 루이즈 글릭의 눈풀꽃(snowdrop)을 외우고 또 외우면서.
/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