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제재의 성과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두고 미국 정부는 물론 전문가 집단도 일제히 비판을 쏟았다. 북한의 민생 악화는 김정은 정권의 자기 통제와 사악한 시스템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이 장관과 한국 정부의 저자세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미국 국영방송인 미국의소리(VOA)는 2일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구체화되기도 전에 한국 통일부가 ‘제재 재검토’를 거듭 요구하는 데 대해 워싱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김정은 정권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됐다며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제재를 탓할 게 아니라 북한 정권에 문제를 제기하라는 촉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VOA는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처해야 할 동맹국이 오히려 미국과 대북제재를 ‘악의 근원’으로 선전하는 북한의 주장을 옹호하고 있다며 미국의 기조와 다른 대북제재와 규제 완화를 연일 촉구하는 것은 한미 간 이견을 부각시키고 북한만 이롭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앞서 지난달 26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5년 간 강한 제재가 이뤄졌고, 이제는 제재가 성공적인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지 아닌지 살펴볼 때가 됐다”며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한 예외를 확대하거나 보다 큰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미국 국무부는 지난달 26일 “제재로 북한 주민의 삶이 어려워졌다”는 이인영 장관의 발언에 동의하느냐는 VOA의 질문에 “북한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유는 제재 때문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정책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북한은 국제 항공과 운송에 대한 국경 폐쇄를 비롯해 극도로 엄격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조치를 시행해 왔다”며 “이런 엄중한 조치들은 인도주의 기관과 유엔 기구들, 다른 나라들의 노력을 크게 저해해 왔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이날 VOA에 “이 장관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제재를 해제하고 김정은 정권의 어떤 악의적 행동과 불법 행위를 공개적으로 용납하려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이 장관은 북한인들에 미치는 제재의 영향을 재검토하는 대신 김정은의 정책이 주민들의 고통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도록 주문해야 한다. 한반도의 모든 문제는 김씨 정권의 사악한 본질과 압제 시스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한국 정부가 김정은 정권의 실정에 대해선 언급을 꺼리면서 도 넘은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어떤 제재도 인도적 지원이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지 않는다”며 “북한의 현 경제 위기는 제재 때문이 아니라 형편없는 경제 계획과 관리상의 무능함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자체적 고립과 봉쇄, 흉작과 악천후, 국경 차단에 따라 붕괴된 북중 무역 등도 북한 주민을 어렵게 만들었다”며 “이 역시 모두 북한 정권이 자초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도 “주민들이 식량난을 겪는 와중에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등 군비 확충에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북한”이라며 “북한인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한, 김정은의 정책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브루스 벡톨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통일부든 누구든 조사 결과 북한의 영양실조 실태를 파악했다면 그런 상황은 5년 전, 15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1992년 이래 지속된 북한의 영양실조 문제는 앞으로도 제재와 관계없이 계속될 것이고 이는 군부와 엘리트들이 주민들을 차단한 채 모든 부를 독차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정부로부터 많은 자금을 공여받은 유엔과 비정부기구의 대북지원이 최고조에 달했던 김대중, 노무현 행정부 시절에도 지원은 일반 주민이 아닌 군부와 엘리트, 평양의 고급 아파트 건설, 최신식 무기 시스템 구입에 사용됐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며 “제재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은 늘 그렇게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주민을 고통에 빠뜨린 장본인은 김정은”이라며 “김정은의 셀프 제재 국경 봉쇄, 무역 차단, 최근 당대회에서 자인한 끔찍한 경제 부실 운영, 희소한 재원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전용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비판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2,500만 명의 북한인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고, 그들은 매우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며 “주민의 건강과 안녕보다 핵 개발과 군사 현대화를 우선시하는 김정은의 의도적인 정책 결정 때문에 북한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모든 중요한 정책 문제와 관련해 심지어 유엔 제재와 자국민의 시민적 자유를 희생해가며 김정은의 이익을 옹호하는 문재인 행정부의 경향을 고려할 때 미국이 한국을 동맹으로서, 그리고 수만 명의 미군과 미군 가족들의 안전한 주둔국으로서 신뢰할 수 있는지를 바이든 행정부는 현실적으로 재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