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인도의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계 어디를 가든 똑같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스님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한국 문화를 먼저 이해했기 때문일 겁니다. 올해로 한국 스님으로 산지 16년 차, 강원도가 좋은 것 보면 저도 이제 한국 스님 다 됐습니다. 하하(웃음)”
강원도 횡성 백운암에서 만난 도엄(道嚴)스님은 유창한 한국말로 말문을 열었다. 인도 출신인 도엄스님은 국내 첫 외국인 공찰 주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는 지난 4월 말사인 백운암 주지로 도엄스님을 공식 임명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외국인 스님이 개인 사찰의 주지나 선원장을 맡은 경우는 있었지만 조계종 사찰 주지로 임명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도엄스님은 “불자들과 100% 소통하지는 못해도 마음으로 이해하면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게 불교라고 생각한다”며 “한국말을 주변 스님들에게 배워서 그런지 불교 용어 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웃어 보였다.
2006년 월정사에서 정념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도엄스님은 월정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와 월정사 생태공원 원감을 거쳤다.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동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스님은 2005년 말 처음 한국에 왔다가 돌연 출가를 결심하고 한국 스님이 됐다. 1999년 인도에서 첫 출가를 한 지 7년 만의 두 번째 출가였다. 속가 사촌지간인 강화도 국제선원 해달스님의 영향이 컸다. 스님은 "한국 남성이 누구나 군대에 가듯이 인도 남성은 만 7살이 넘으면 누구나 절에 들어가 출가할 기회를 갖게 된다"며 "인도에서의 출가가 관습에 따라 절에 들어갔다가 눌러살게 된 경우라면 한국에서의 출가는 대중과 함께하는 수행 문화에 매력을 느껴 자발적으로 행한 사실상 첫 번째 출가"라고 설명했다.
백운암으로 온 것도 스님의 의지였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백운암은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천일기도를 했던 고찰(古刹)이다.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 간 개인사찰로 운영돼오다가 1969년 월정사에 희사하면서 말사로 등록됐지만 오랜 기간 스님이 거처하지 않은 채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도엄스님은 주변의 만류에도 백운암에 가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백운암 복원이라는 중책을 스스로 떠안은 셈이다.
스님은 “지난 1월 처음 백운암을 찾았다가 마치 콩깍지가 씌인 것처럼 산중암자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반해 백운암 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백운암으로 보내 달라는 요청에 정념스님은 ‘신도도 없는 사찰에서 혼자 뭐 먹고 살거냐’고 반대했다. 설득 끝에 백운암에 온 것은 좋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스님은 "막상 와 보니 신도라고는 멀리서 가끔씩 기도를 하러 오시는 한 분이 전부였고, 나무를 해 불을 때야 하는 등 뒤늦게야 현실적인 문제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고 전했다.
도엄스님이 부임한 지 이제 두 달. 그 사이 사찰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무너져 가는 대웅전과 산신각에 새롭게 칠을 했고, 잡풀로 무성하던 경내는 말끔히 정리됐다. 주변 도움 없이 모두 스님 손을 거쳤다. 스님은 사찰의 변화를 매일 같이 기록해 사람들과 유튜브로 공유하고 있다. 스님은 "아침에 눈을 뜨면 땔감을 마련하고, 밥도 직접 지어 먹어야 하고, 수행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영상 기록물을 통해 백운암이 새로 태어나는 과정을 대중들과 함께 나누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온라인 법회도 준비 중이다. 아직 사찰 개보수 작업이 진행 중인데다, 코로나19, 낮은 접근성 등 여러 여건 상 오프라인 법회를 열기는 어려운 현실을 고려했다. "무엇이든지 욕심을 내지 않고 이치에 맞게 물 흐르듯이 순리대로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백운암도 욕심을 버리고, 인연에 따라 불자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는 사찰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백운암이 새로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글·사진(횡성)=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