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봐도 나오지 않던 첫 우승이 4억 원짜리 ‘초대박’ 대회에서 터졌다.
2009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 데뷔했지만 우승이 없던 호주 동포 이준석(33)이 남녀 통틀어 국내 프로골프 대회 최다 우승 상금 4억 원의 주인공이 됐다. 이준석은 27일 천안 우정힐스CC(파71)에서 끝난 코오롱 제63회 한국오픈에서 나흘 합계 8언더파 276타로 1타 차 정상에 올랐다. 4라운드 성적은 버디와 보기 4개씩으로 이븐파.
열다섯에 호주로 골프 유학을 떠나 호주 국가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던 이준석은 2008년 한국으로 돌아와 KPGA 투어 수능 격인 퀄리파잉 토너먼트에 수석 합격했다. 호주 대표팀에서 전 세계 랭킹 1위 제이슨 데이와 한솥밥을 먹은 이력이 화제가 되곤 했는데 우승은 지독하게 터지지 않았다. 이날 전까지 두 차례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고 우승은 2012년 차이나 투어 1승이 전부였다. 올해는 앞선 두 대회에서 연속 10위권으로 힘을 내고 있던 차에 마침내 98번째 출전 대회에서 ‘97전 98기’를 이뤄냈다. 1·2라운드 공동 선두, 3라운드에 1타 차 단독 선두를 기록한 뒤 결국 우승하는 ‘와이어 투 와이어’ 기록도 썼다. 경기 후 이준석은 “그동안 우승 문턱에서 늘 좌절하면서 고민도 깊었고 노력도 그만큼 많이 했다. 절망할 만한 순간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더니 이런 결과가 찾아왔다”면서 “믿고 응원해준 아내, 두 아이에게 감사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준석은 박은신, 김주형과 엎치락 뒤치락 챔피언 조 대결을 벌였다. 한 홀 남길 때까지 3명이 7언더파 공동 선두였다. 연장전 기운이 짙게 드리웠지만 이준석은 18번 홀(파5)에서 경기를 끝내버렸다. 김주형이 티샷을 오른쪽 아웃오브바운스(OB) 구역으로 보내면서 승부는 박은신과 2파전으로 좁혀졌다. 박은신의 세 번째 샷이 핀에서 조금 먼 쪽에 멈춘 반면 이준석은 핀 2.5m 지점에 잘 보내 놓았다. 박은신이 2퍼트 파로 홀아웃 한 뒤 이준석은 침착하게 버디 퍼트를 넣고 마음껏 포효했다.
16번 홀(파3)에서 보기를 범할 때만 해도 우승 경쟁에서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선두 박은신과 2타, 2위 김주형과 1타 차이의 3위였다. 하지만 마지막 두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으며 짜릿한 뒤집기 우승을 완성했다. 17번 홀(파4)에서 성공한 버디는 거의 10m에 가까운 먼 거리 퍼트였다. 이준석은 “17번 홀 먼 거리 버디 성공으로 확신이 생겼다. 마지막 홀 버디는 무조건 들어갈 거라는 믿음으로 쳤다”고 말했다.
집이 천안인 이준석은 2019년부터 3년째 대회장인 우정힐스CC를 ‘홈코스’ 삼아 연습해오고 있었다. 코스를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었다. 2018년 17위가 개인 최고 상금 순위인 이준석은 올해 상금왕도 노려볼 수 있게 됐다. 상금 23위에서 단숨에 2위(약 4억 5,500만 원)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2010년 데뷔한 박은신은 막판 단독 선두로 나서 첫 우승 기회를 잡았으나 17번 홀 티샷 실수(보기)에 발목 잡혔다. 상금 1억 2,000만 원 획득에 만족해야 했다. 상금과 대상(MVP) 포인트 선두를 달리는 19세 김주형은 6언더파 3위로 마쳤다. 2주 연속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올 시즌 7개 대회에서 네 번이 톱 3일 만큼 초강세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