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복숭아에 난 벌레의 길





김안려




구불구불하게 패여 있는 길 하나 보인다

가고 있는 길 어딘지 모른 채

우주의 한가운데를 열심히 기어가고 있다

홈이 파인 둥근 길 접어놓아도

언제, 벌린 사람의 입 속으로

들어갈지 알 수 없는

잦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잎사귀같이

불안에 잠기는 붉은 흙 위의 길에서



신발을 신어보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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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날려가 버리고 마는

풀무치같이 가벼운 목숨을 놓아 버린다

복숭아밭에서 종일 일하면, 벌레 먹고 무른 복숭아를 덤으로 주곤 했다. 가족들이 무릉의 과일 앞에 둘러앉는다. 밤에 복숭아를 먹으면 미인이 된다 했다. 복숭아 속을 보지 말고 별을 헤며 먹으라 했다. 모르면 약이요, 알면 병이라 했다. 원효 대사가 유학 가지 않은 이유를 알 듯했다. 지구라는 복숭아가 무르익었다. 구불구불 내던 길을 직선으로 닦으며 간다. 산이 막으면 터널을 뚫고, 강이 막으면 다리를 놓아 간다. 지구를 다 파먹은 이들이 우주 한가운데를 노린다. 복숭아처럼 달달한 행성을 찾는다. 언제, 입 벌린 블랙홀 속으로 들어갈지 알 수 없지만 끝까지 간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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