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차탈회윅·폼페이·앙코르·카호키아…도시의 죽음, 사연은 달라도 본질은 같았다

■도시는 왜 사라졌는가-애널리 뉴위츠 지음, 책과함께 펴냄

도로·수도·의료·교육·문화 등

편리한 인프라에 거주민 늘수록

지배계층 통제 권력은 점차 약화

자연재난 덮쳐도 재건 힘 못쓰고

정치적 판단에 도시 사라지기도

현재 도시에 유의미한 교훈으로

터키 중부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 차탈회윅/사진출처=유네스코터키 중부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 차탈회윅/사진출처=유네스코




도시는 편리한 곳이다. 도로, 수도, 에너지, 의료, 교육, 문화 등 사람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기반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도시 거주민이 많아질 수록 도시 생활의 장점 만큼이나 단점도 늘어난다. 반갑지 않은 벌레와 동물이 사람을 따라 모여 들고, 쓰레기가 늘면서 질병이 발생한다. 공동체의 삶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불만과 갈등도 늘어난다. 때로는 갑작스러운 악재가 들이닥쳐 그간 사람들이 이룬 도시의 기반을 한번에 망가뜨리기도 한다. 거주자가 많을 수록 악재의 파급력도 커진다. 지금 이 순간도 지구 곳곳에서 대홍수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고, 화재로 1,000만㏊가 넘는 땅이 시커멓게 변하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더욱 치명적이다. 도시 밀집도와 바이러스 전파력은 거의 비례한다.



이러한 장단점을 다 가진 도시의 미래는 어떠할까. 도쿄, 델리, 상하이, 상파울루, 멕시코시티 등 2,000만이 넘는 사람이 모여 사는 오늘날의 대도시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서울, 뉴욕, 싱가포르, 런던 등의 인프라 집적도는 언제까지 최상의 수준을 유지할까. 가보지 않은 미래에 대해 확언할 수 없기에 인간은 결국 과거에서 지혜를 빌린다. 인간 역사에서 ‘놀랍다’는 평을 받는 과거 도시의 흥망성쇠에서 미래를 읽는 열쇳말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게 미국 저널리스트 애널리 뉴위츠의 주장이다.

뉴위츠는 인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옛 도시 네 곳을 탐사한 후 ‘도시는 왜 사라졌는가(원제 : Four lost cities)’를 집필했다. 고고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세계 각지의 고고학자와 현장 취재를 기반으로 책을 완성했다. 뉴위츠가 지목한 도시는 터치 중부 신석기 유적지인 ‘차탈회윅’, 이탈리아 남해안의 휴양 도시 ‘폼페이’, 중세 캄보디아 거대도시 ‘앙코르’ 그리고 미국 미시시피 강변의 대도시 ‘카호키아’다. 이중 폼페이는 대중에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차탈회윅과 카호키아가 알려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앙코르의 경우 관광지로 유명하긴 하지만 서양인들에 의해 판타지로 포장돼 그릇되게 알려졌다.

차탈회윅 유적지 발굴현장./위키피디아차탈회윅 유적지 발굴현장./위키피디아


차탈회윅은 9,000년 전 건설된 도시다. 유목 생활을 하던 인류가 정착해 농경 생활을 시작한 시점이다. 도시 생성 이후 대략 1,000년 동안 5,000명에서 2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당시 기준으로는 엄청난 수의 사람이 모여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워낙 오래 전에 도시 기능을 잃은 탓에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지만 학자들은 지중해 연안에 들이닥쳤던 기후 변화가 도시민들의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다. 한계수익 감소가 도시 응집력을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다른 사람의 집 담이 무너지면서 ‘내 집’을 침범하고 거리에 쓰레기가 쌓이는 등 가욋일이 많아지면서 결국 도시를 떠나려는 사람이 늘었는데, 이런 불편을 해결하고 통제할 권력이 약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예상한다.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폼페이의 쥬피터 신전./위키피디아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폼페이의 쥬피터 신전./위키피디아




폼페이는 도시가 사라진 후 잊혔던 게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서기 79년 폼페이에 화산 폭발 재앙이 닥친 후 폼페이는 ‘파멸’한 것으로 기록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폼페이 주변에서 도시의 흔적을 찾아낸다. 로마 제국이 폼페이 재건에 나설 수는 없었지만, 폼페이 난민들을 나폴리 등 인근 마을로 이주시키고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도시 권역을 넓히고 도로를 늘렸다는 새로운 증거를 내놓는다. 화산 폭발 한 방에 완전히 날아간 게 아니라 정치가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살려낸 사례로 봐도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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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년 전 세계급 도시였던 앙코르/위키피디아1,100년 전 세계급 도시였던 앙코르/위키피디아


앙코르는 자연 재난과 정치 혼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100년 전 앙코르는 100만 가까운 주민과 관광객, 순례자가 모여드는 세계 최대급 도시였다. 하지만 100년에 걸쳐 기후 위기가 이어지는 동안 권력이 잘못 설계한 수로망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어떤 해에는 제방이 우기에 무너졌고, 어떤 해는 수로가 토사에 막혀 물 공급량이 급감했다. 도시를 지배하던 왕이 수로 재정비에 노동력을 더 이상 강제로 동원하지 못하게 되면서 도시 기능이 상실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이전 세대 만큼의 경제적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 젊은 세대들은 도시를 줄줄이 이탈해 갔다.

미국 미시시피 강변의 카호키아 둔덕./위키피디아미국 미시시피 강변의 카호키아 둔덕./위키피디아


유럽인들이 북미에 오기 전 가장 큰 도시였던 카호키아에서 사람들은 흙으로 높다란 피라미드와 다락 통로를 건설했다. 고고학자들은 어느 날 수십 개의 집 모형이 일시에 불탄 현장을 발견한다. 카호키아인들은 모든 건조물에 정해진 수명이 있다고 봤고, 언제나 전체 도시가 일시에 폐쇄되는 순간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카호키아의 쇠락에 미시시피 강의 범람과 가뭄을 연관 짓기도 한다.



각 도시의 성장과 쇠락의 과정은 다르다. 하지만 기후 변화가 영향을 미친 점은 분명하다. 여기에 더해 정치적 판단이 도시의 운명을 흔든다. 피할 수 없는 자연 대재앙이 덮쳤던 폼페이와 달리 앙코르는 인간의 힘으로 번영을 더 길게 누렸을 수 도 있다. 폼페이 난민 중 일부는 정치적 결단 덕에 이주한 도시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가 직면한 문제점들을 생각해보면 과거의 교훈은 유의미하다. 도시에 대한 기후 변화의 영향력이 나날이 커지는 지금, 적어도 미리 대비할 수 있는 문제는 혜안을 갖고 정치적으로 풀어보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1만6,000원.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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