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야심작인 세계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V'가 자국에서 멸시당하는 신세가 됐다. 자국에서 백신 접종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수백명의 러시아인들이 화이자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기 위해 이웃 국가인 세르비아로 원정 접종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9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에선 미국에서 개발된 화이자 백신이나 영국에서 개발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기 위해, 이웃 국가인 세르비아로 '원정접종'을 떠나는 행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통신은 최근 몇 주 동안 수백명의 러시아인들이 단체로 '세르비아 원정접종'에 나섰으며, 세르비아 수도인 베오그라드의 호텔·식당·접종센터 등에서 러시아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관광사업자협회는 WHO 승인 백신의 접종수요가 늘어나자, 지난달 중순부터 '원정접종' 관광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협회 관계자는 "백신 접종비용을 포함한 가격이 백신에 따라 300~700달러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세르비아에선 현재 화이자·AZ·시노팜 등의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할 수 있다.
러시아 여행사들은 최근 2차 접종까지 마쳐야 하는 다른 백신과 달리 1회만 접종하도록 설계된 얀센백신 접종을 희망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크로아티아 원정 접종' 상품도 추가로 내놨다. 모스크바의 한 여행사는 "고객들은 다양한 이유로 유럽에 가야 하는데,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원정 백신 수요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러시아인들이 굳이 원정 접종을 떠나는 이유는 스푸트니크V가 아직 세계보건기구(WHO)의 승인을 받지 못해 해외여행 때 제한이 많기 때문이다. 스푸트니크V는 지난해 8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이긴 하지만, 아직 WHO의 사용 승인을 받지 못했다. WHO가 현재까지 긴급사용을 승인한 건 화이자·모더나·AZ·얀센·시노팜·시노백 등 6종뿐이다. 러시아 정부는 WHO가 조만간 자국 백신의 긴급사용을 승인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올 연말까지 승인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최근 러시아의 코로나19 확산세는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9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일일 신규확진자는 2만9,362명으로 3만명에 육박했고, 일일 신규사망자는 968명으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2차 접종까지 완료한 백신 접종 완료율은 29%에 불과하며, 1차 백신 접종률도 33%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