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현정택의 세상보기] 나라 경제 옥죌 탄소 감축 약속

■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신재생에너지 생산 불안정한데

文, 온실가스 감축 목표 대폭 상향

전력 공급 차질로 경제 악화시킬것





우리나라 국민이 국제 협약에 관심을 쏟았던 것은 지난 1990년 무렵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였다. 농민을 중심으로 한 강렬한 반대 운동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고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가 공약까지 했다.



그보다 훨씬 큰 파장을 일으킬 약속을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1월 영국 국제회의에서 할 계획이다. 국가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40% 감축하겠다는 내용이다. 온실가스 주종인 탄소를 배출하는 에너지 소비량을 대폭 줄이거나 현재와 다른 에너지 수급 체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에너지 소비가 줄어든 때는 외환위기와 코로나19 등 경제가 역성장한 해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탄소 감축 약속은 경제 축소의 위험을 지는 약속이다. 물론 청정에너지로 바꾸면 소비를 꼭 안 줄여도 온실가스 감축을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전환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일찍부터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인식해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개발해온 유럽연합(EU)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연평균 2% 이내로 잡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발표한 안은 그 두 배가 넘는 연평균 4.17% 감소다. 핵심인 전력 부문에서는 2030년까지 44.4%를 줄인다. 현재 38% 수준인 석탄발전 비중을 22%로 낮추고, 신재생에너지를 8%에서 30%로, 신기술인 암모니아 발전을 3.6%로 늘린다. 원자력발전은 수명 연장 없이 가동을 줄여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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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날씨 영향으로 상시 생산할 수 없어서 공급이 불안정하다. 이 정부 들어 설비를 몇 배 늘렸지만 실제 발전량은 불과 몇 퍼센트 늘었다. 발전 설비에 추가해 송전 시설과 저장 장치까지 갖추려면 지금 바로 시작해도 2030년까지 상용화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의 최태원 회장은 “8년밖에 남지 않아 현실적 가능성에 대해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홍수·산불과 같은 재난을 막기 위해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며 지구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도 동참해야 한다. 다만 국가는 이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수단과 계획을 토대로 이를 달성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 약속은 그냥 선언적인 목표가 아니라 파리국제협약에 의한 법적 책임이 있는 의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 책임을 이행하는 게 싫어서 협약을 탈퇴했으나 한국이 195개국이 가입한 국제 협약에서 나올 수는 없다.

무리한 국제 약속은 결국 전력 공급 차질과 비용 증가를 초래하고 그 사용처인 철강·자동차·반도체의 생산을 위협한다. 국내 기업의 해외 이전을 확대하고 제조업 부문 등 고용 상황도 어렵게 만들 것이다. 한국은행은 탄소 중립 이행으로 국내총생산(GDP) 누적 감축 효과가 연평균 0.32%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정 때 김영삼 대통령은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국무총리와 농림수산부 장관을 경질했다. 내년 봄 선출될 대통령은 나라 경제를 옥죄는 현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약속으로 임기 동안 애를 먹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2023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를 한국에 유치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주최국 체면상 무리한 약속이라도 이행해야 하는 부담이 더 늘어난다.

마지막 가냘픈 기대를 해본다. 18일 탄소중립위원회 전체회의와 이달 말 국무회의가 열리는데 전문가적 판단과 국정에 대한 책임 의식을 바탕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심의·조정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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