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 시간) 리처드 클라리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이 꽤 중요한 발언을 하나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콘퍼런스에서 “다음 달에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속도를 높일지 논의하는 것이 적절(appropriate)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인데요.
간단히 말해, 물가 상승 우려에 테이퍼링을 더 빨리 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는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데요. 오늘은 한국장 휴무로 ‘3분 월스트리트’가 없는 날이지만 테이퍼링에 관한 소식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한층 중요해진 12월 FOMC…테이퍼링 조기 종료에 무게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현재 매달 1,200억 달러씩 이뤄지고 있는 미 국채와 모기지담보부증권(MBS) 매입을 축소하기로 하면서 일단 12월까지 매달 150억 달러씩 하겠다고 했습니다. 별다른 게 없으면 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좋겠다는 뜻도 내비쳤는데요. 물론 상황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했었지요.
그런데 12월 FOMC를 약 4주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연준 2인자인 클라리다 부의장이 나섰습니다. 그의 발언의 핵심은 테이퍼링 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논의하는 게 적절하다는 건데요. 이를 두고 할 수도 있다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는 분들이 계셔서 잠깐 설명드립니다.
테이퍼링이라는 건 시장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느냐와 별도로 매우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그동안의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인데요. 월가의 예측대로 이번에는 테이퍼 탠트럼(긴축발작)이 없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연준도,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신경을 쓰고 있지요.
이 정도 무게 있는 사안을 그냥 가볍게 “논의할 수 있어. 아니면 말지”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물론 상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100%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속도 증가에 상당히 무게를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시장에 미리 알려주는 것이죠.
FOMC가 합의체이고 의장의 말이 곧 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장과 부의장, 뉴욕 연은 총재 등 지도부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부의장이 이런 얘기를 꺼냈다는 것, 그리고 전날 뉴욕 연은 총재가 “인플레이션이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고 한 분위기를 봐야 합니다.
이를 보면 12월 FOMC에서 추가적인 긴축 움직임이나 관련 발언이 나올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이제 12월 FOMC가 주요한 변곡점이 될 텐데요.
클라리다 부의장은 “12월 FOMC 회의 전까지 나오는 경제 지표를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며 “미 경제는 매우 강하며 인플레이션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보면 ‘3분 월스트리트’에서 전해 드린 대로 11월 개인소비지출(PCE) 지수와 블랙프라이데이를 비롯한 땡스기빙 데이 매출, 그리고 다음달 3일에 나올 11월 고용보고서가 중요하겠습니다. 12월 FOMC는 14일부터 15일까지 열리니 그때까지 이들 지표를 잘 보겠죠. 그 사이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테이퍼링 종료 시점을 앞당기는 조치를 할 수 있겠습니다.
월러 “앉아 있는 게 좋은 정책 아냐”…“일단 테이퍼링 끝내놓고 상황을 보자”
이날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도 “향후 지표를 보면서 더 빠른 테이퍼링 쪽으로 방향을 틀 필요가 있다”며 제로금리 시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는데요. 그 역시 조기 테이퍼링 이후 금리인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 가지 짚어볼 대목은 연준의 전략입니다. 월러 이사는 이를 추정할 수 있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는 “물가상승 압력이 1년 안에 완화할 수 있다고 해도 이것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면서 앉아 있는 것이 반드시 최적의 정책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냥 연준이 더 이상 “물가 상승은 일시적이며 내려갈 거에요”라고 앵무새처럼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거죠.
월가 인사들과 연준과 재무부 같은 정책 당국자의 입장은 완전히 다릅니다. 월가 인사들의 전망이 틀리면 자신이 운용하는 자산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통화당국의 판단이 잘못되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가 뒤흔들리게 되지요. 선거에서 정권을 내놓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과잉대응에 대한 우려도 여전합니다만 지금처럼 인플레이션이 정치화한 상황에서는 뭐라도 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연준이 그 덫에 빠지고 있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월러 이사의 앉아 있는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이 딱 그렇습니다.
추가로 월러 이사는 “테이퍼링 속도를 높인다고 왜 긴축발작이 온다는지 모르겠다. 테이퍼링 종료 직후 금리인상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포인트가 더 나오는데요. 연준은 테이퍼링 속도를 높이는 쪽으로 가더라도 여전히 금리인상은 멀었다는 주장을 내세울 것 같습니다.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월러 이사가 이를 재확인해줬다는 측면이 있는데요.
이 경우 시장은 그 사이의 시간을 더 즐기자고 할 수 있습니다. 증시 방향은 예측이 정말 어려운데요. 다만, “갈수록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할 여지도 있습니다.
어쨌든 연준의 전략은 일단 테이퍼링을 끝내고 보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테이퍼링이 끝나야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구요. 그래서 물가상승이 심상치 않으니 일단 테이퍼링을 끝내놓고 상황을 보자는 것이죠. 그래야 대응을 더 늦지 않고 빨리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3분 월스트리트’에서 전해드린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의 생각과 비슷합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테이퍼링을 종료하고(이것도 상황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금리는 시간을 갖고 보자는 것이죠. 조기 테이퍼링 종료는 시장에도 연준이 인플레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는 신호를 줄 수도 있습니다.
이르면 3~4월에 테이퍼링 끝날 수도…서머스 “미국 경제 괜찮을 가능성 10~15%”
그럼 궁금증은 얼마나 테이퍼링을 일찍 끝내느냐겠죠. 테이퍼링 종료와 금리인상이 직접 관계가 없다고 해도 어쨌든 테이퍼링이 끝나면 언제든 금리인상이 가능한 구간에 접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퍼먼 교수는 내년 3월에 끝내는 게 좋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에프엑스스트리트(FXSTREET)에 따르면 4월 얘기도 나오는 듯합니다. 봄에 끝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동안 매달 150억 달러 가정 시 내년 6월께 종료될 것으로 봤는데 이것이 빨라지는 겁니다.
연준 내에서도 리치먼드 연은 총재가 테이퍼링에 좀 더 유보적이고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는 과민반응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12월 FOMC까지 시간이 남았고 그동안 경제의 흐름이 바뀌거나 내년 들어 통화정책 방향이 변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앞서 설명드린 대로 지도부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고 지역 연은 총재들의 경우 전체적인 분위기와 흐름만 참고하면 됩니다.
이와 관련해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연준이 더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는데요. 그는 “불행하게도 미국 경제가 괜찮을 확률은 10~15%로 내려왔고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꽤 넘어 상당히 지속할 확률이 50~55%, 통제가 안 돼 경기둔화로 이어질 확률이 30~35%”라고 했습니다. 80~90% 확률로 ‘좋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죠.
지금까지는 서머스 전 장관의 얘기가 상대적으로 잘 맞았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맞춰온 부분이 있으니 경각심을 갖고 봐야겠습니다. 서머스 전 장관은 앞서서는 인플레 가능성이 3분의1, 인플레에 대한 과잉대응으로 인한 경기침체가 3분의1, 괜찮을 확률을 3분의1로 봤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꽤 안 좋아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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