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 사라진 정치판의 어른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트럼프의 코로나 확진 '남탓'처럼

끝없는 불평·자기연민으로 일관

책임감 없는 보수가 주류로 득세

밥 돌 같은 정치인 이젠 볼 수 없어






전 상원 원내총무이자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밥 돌이 98세를 일기로 지난 5일 우리 곁을 떠났다. 그와 정치적 의견을 달리하던 사람들조차 망자를 향한 진한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그가 단지 전쟁 영웅이라거나 국익을 위해 양대 정당이 기꺼이 협력하던 시대를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인생담은 공인이 공인에 걸맞은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던 시절을 회상하게 만든다. 적어도 그 시절의 공인들은 그들이 저지른 과오를 솔직히 인정했고 전쟁 시에는 단 하나뿐인 목숨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인간의 성품이 뻔하기 때문에, 마치 이 같은 미덕을 지닌 양 처신하는 정치인 중 대다수는 위선자다. 하지만 분명한 이상형이 존재했기에 속속들이 부정직하거나 확실한 거짓말쟁이, 혹은 비겁자는 정치판에 발을 붙일 수 없는 부적격자로 간주됐다.

지금은 다르다. 우연히도 돌의 부음은 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가 무책임하게 행동했던 사실이 알려진 후 며칠 뒤에 나왔다. 당시 트럼프는 검사 결과를 숨겼을 뿐 아니라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거부한 채 정상적인 활동을 이어갔고 이로 인해 수백 명을 바이러스 감염 위험에 노출시켰다. 뒤이어 코로나19에 걸린 사실이 확인되자 그는 자신이 만났던 골드 스타 가족이 바이러스를 옮긴 것이라며 억지를 부렸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트럼프가 골드 스타 가족을 만난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진단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후였다. 다시 말해 트럼프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골드 스타 가족을 감염 위험에 빠뜨려놓고서는 오히려 그들에게 책임을 덮어씌운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사실 우리는 트럼프처럼 악의적인 행동을 일삼는 고위 공직자를 본 적이 없다. 문제는 트럼프가 그의 잘못된 행동과 관련해 정당한 대가를 치를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어쩌다 미국의 정치판이 이 지경이 됐을까. 그들은 여전히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기 원한다.

관련기사



한때 정치인의 치명적 결격 사유로 간주됐던 성격상의 하자와 관련해 트럼프는 그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 한두 세대 이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생각해보라. 국민적 지명도를 지닌 최고위 정치인이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억지 주장과 끝없는 자기 연민을 방패막이 삼아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가당키나 했던가. 사인펜으로 공식 기상도를 멋대로 색칠해서라도 자신의 과실을 은폐하고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정치인이 무사히 처벌을 피해 갈 수 있었을까.

트럼프는 그의 골수 지지자들을 위해 새로운 기준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6일 국회의사당을 점거해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했던 폭도 중 상당수는 재판정에서 자기 연민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한 예로 카일 리튼하우스는 증인석에서 눈물을 쏟았다. 인명을 살해했다는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미시간고등학교 학생 네 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격 사건과 관련해 용의자인 미성년자 아들에게 살인 흉기를 제공한 크럼블리 부부 역시 그들이 기소됐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요즘 우파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남성스러움이라는 아이디어에 집착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진짜 사나이’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맡겨진 부담을 묵묵히 감당해내는, 강하면서도 조용한 타입의 남성이 아니었던가.

시작은 트럼프가 아니었다.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 이라크 침공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부실 대응의 여파가 한꺼번에 휘몰아친 2006년, 필자는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책임 회피와 실패의 책임을 온통 타인에게 전가하는 이른바 ‘멘시 갭(Mensch Gap)’ 현상을 소개한 바 있다. 멘시 갭이란 고위 공직자들 사이에 나타나는 책임감 결여를 의미한다. 후일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우파에 속한 평론가들의 책임 회피와 전가 시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고 오바마케어가 참담한 실패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완전히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단 한 번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보수주의는 악의적인 불평가들의 결정체로 변모했다. 물론 좌파 진영에도 자기 연민에 빠진 위선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트럼프와 그의 아류가 우파를 장악한 것처럼 좌파를 쥐고 흔들지 않는다.

필자는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 아마도 이 같은 변질은 수십 년 전, 그러니까 베트남전 당시에 시작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같은 현상이 실재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파에 속한 정치판의 어른은 단 한 명도 없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