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공모 펀드 시장은 지난 10년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비록 올해는 ‘박스피’ 영향과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성장에 힘입어 공모 펀드 시장에 조금 온기가 돌고 있지만 ‘전성기’로 여겨졌던 2000년대 중반 수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전통적인 주식형 공모 펀드의 경우에는 ETF 등 직접 투자에 적합한 상품이 대거 등장하는 가운데 금융소비자보호법으로 오프라인 점포의 펀드 판매가 부진한 상황이라 돌파구를 꾀하기는 만만찮은 상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6일 현재 ETF를 포함한 주식형 공모 펀드의 설정액은 총 74조 6,952억 원이다. 이는 지난해 말보다 21% 증가한 액수다. 해외 주식형 공모 펀드를 중심으로 자금 유입이 두드러졌던 영향이 컸다. 해외 주식형 공모 펀드의 설정액은 지난해 12월 말보다 8조 1,345억 원(57.6%) 늘어난 22조 2,640억 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공모 펀드 설정액은 10.2% 증가해 47조 5,626억 원에서 52조 4,312억 원으로 불어났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각종 테마형·액티브 ETF 개발에 나서면서 공모 펀드 ‘외연’이 커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상장 ETF 순자산은 2019년 50조 원대에서 올해 12월 70조 원대까지 성장했다. 퇴직연금 시장 성장에 맞춰 타깃데이트펀드(TDF) 등 맞춤형 상품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공모 펀드 시장에는 긍정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ETF 시장 성장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국내 주식형 공모 펀드 시장은 과거 대비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금투협에 따르면 2008년 말 주식형 공모 펀드 설정액은 총 130조 6,708억 원에 달했다. 2000년대 중반 불었던 ‘적립식 펀드’ 열풍이 정점을 찍었을 때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 영향으로 2009년 말 117조 9,985억 원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다가 급기야 지난해 말에는 61조 6,921억 원까지 감소하며 연말 기준 2006년(40조 4,625억 원) 이후 최저 수준으로 위축됐다.
공모 펀드 시장이 오랜 기간 침체기를 걷는 배경은 복합적이다. 2000년대 중반 금융사들의 권유로 적립식 펀드 투자에 가입했던 투자자들이 글로벌 금융 위기로 큰 손실을 보면서 공모 펀드 시장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영향이 컸다. 2019년까지 국내 증시가 ‘횡보세’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던 것도 펀드 투자를 꺼리게 했다.
최근에는 금융사들의 공모 펀드 ‘직접 판매’도 부진한 상황이다. 금투협에 따르면 판매사들의 주식형 공모 펀드 판매 잔액은 올해 10월 말 기준 31조 원으로 2017년 말(42조 원) 대비 26.2% 줄었다. 최근 사모펀드(PEF) 사태와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등이 겹치면서 판매사들의 펀드 취급 유인이 감소한 영향이 크다는 해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판매사들이 펀드 판매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라며 “일반 주식형 공모 펀드를 취급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 ‘직접 투자’ 성향이 강해진 것도 변수다. 해외 주식 시장이 대표적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이달 16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 주식을 총 216억 7,794만 달러(약 25조 5,995억 원) 순매수했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던 지난해 연간 순매수액(197억 3,412만 달러)보다 9.8% 많은 액수다. 한국거래소와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이달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의 거래 비중은 48.4%로 하락했으나 지난해 4월부터 올해 9월까지는 이 비율이 18개월 연속 60%를 웃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