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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정치에 휘둘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920조 투자·운영 독립성 높여야

[시장경제 역행하는 국민연금]

(하) 옥상옥·무책임 지배구조

국민연금 운용체계 틀어 쥔 관료들 무리한 정책 남발

정권 입맛 따라 기금운용위원들 구성… '거수기' 노릇만

加·스웨덴처럼 정부 개입 줄여 전문가 집단으로 개편을








자산 운용 규모 1,000조 원 시대를 눈앞에 둔 국민연금이 갈팡질팡 행보로 국민 노후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총지휘하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명분만 앞세운 일부 위원과 통제권을 내세운 정부가 불통과 졸속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 실행 방안과 부작용에 대한 해법 없이 국민연금 지배구조의 정점을 정치권과 정부가 틀어쥔 채 책임은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지탱할 미래 세대 가입자를 위해서라도 독립적인 최고 전문가 집단으로 국민연금 지배구조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복지부 등 겹겹 통제 속…제대로 된 견제는 없어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질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보건복지부 등 관료 집단을 중심으로 일부 단체가 실질적 영향력을 독점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는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으로 복지부 연금정책국이 안건 구성과 회의 운영을 총괄한다. 여기에 타 부처 차관급 등 당연직 정부 위원이 30%를 차지한다.

기금운용위 산하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 역시 복지부 차관이 위원장으로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 위원회는 국민연금 투자나 수익률, 주주권 행사와 직결되지만 실제 기금을 투자하는 기금운용본부 산하가 아니라 복지부 차관의 실무 평가위 아래에 있다.



특히 복지부는 기금운용위와 산하 위원회의 위원을 추천받아 임명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기획재정부 역시 기금운용계획 지침을 통보하고 국민연금공단과 기금운용본부의 예산을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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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복지부와 기재부의 국민연금 관리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권한에 비해 소홀하기 짝이 없다. 국회와 감사원이 감사를 벌이고 있지만 대부분 전체 운영상의 문제를 따질 뿐 투자 의사 결정 과정까지 들여다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독립성을 구실로 복지부가 올린 안건의 세부 추진은 기금운용본부에 맡기고 있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책이 남발되기도 한다. 이번에 논란이 된 주주대표소송 역시 복지부가 안건을 올렸지만 구체적인 지침은 기금운용본부와 수탁위에 떠넘겼다. 국민연금의 전직 관계자는 “주주대표소송은 연금 내부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됐는데 복지부가 기금운용위에서 맡기가 부담스럽자 수탁위로 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결정기구 기금운용위…기초적 질의로 거수기 노릇


기금운용위 역시 형식적 대표성만 중시하다 전문성이 떨어지면서 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매달 열리는 기금운용위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2~3시간 남짓 진행되고, 정부 측 인사 상당수는 불참하기 일쑤다. 근로자단체·사용자단체·지역가입자단체 추천 인사들이 참여하는데 금융이나 연금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다수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자산 배분 전략의 타당성을 논의하지 못하고 기초적 질의가 나오면 기금운용본부와 복지부 담당자의 답변으로 끝나고는 한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권 성향의 시민단체가 위원으로 참여해 회의의 실질적 주도권을 행사하고는 했다. 보수 정부가 자리하면 바른사회시민회의, 진보 정권에서는 참여연대 등이 위원회를 주도하는 것이다. 이는 기금운용 성과에도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흔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때 기금운용위를 전문가 집단으로 개편하려는 움직임이 힘을 받기도 했지만 기금운용위 전체가 이에 반대하면서 자문 기구를 강화하는 선에서 끝났다.

최고 전문가 집단으로 외부 압력 벗어나야


해외 연기금 중 장기간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며 국민적 지지를 받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정부로부터 독립을 가장 우선한다. 이들은 투자 결정뿐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따른 주주권 행사 등도 금융·경영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다. 스웨덴연금(AP)은 공공성을 이유로 정부가 관여하기는 하지만 법률로 투자 제약만 명기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 연금 역시 정부는 투자 기대치나 투자 위탁 지시서를 제시하는 선에서만 관여하고 있다.

반면 국민연금은 해외에도 사례를 찾기 힘들 만큼 덩치가 크고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연금을 지탱할 미래 세대 가입자를 운영에 참여시킬 수 없는 한계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최고 전문가 집단으로 기금운용위를 개편하고 독립적인 기구가 견제하면서 정부는 법률로 기본적 운용 원칙만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국가재정법·공공기관운영법 등으로 중복 감시·감독을 하면서 정작 투자 운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난맥상도 해결해야 한다. 기금운용위의 한 관계자는 “운용위원의 수만 많고 연금 제도나 투자 분야의 전문성은 떨어지기 때문에 연금의 의사 결정을 제대로 심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세원 기자·최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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