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독일 등 해외 연기금이 주주 대표 소송 제도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바로 자국 기업을 어렵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소송 대상자가 되는 이사진은 통상 3년 넘게 이어지는 재판 과정에서 소송 비용은 물론 패소 시 손해배상 금액까지 떠안게 돼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동근(사진)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은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주주 대표 소송 확대 방안에 대해 “기업 규제가 늘면서 우리나라가 ‘소송 공화국’이 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의 주주 대표 소송으로 얻을 수 있는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게 이 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소송의 대상자인 이사가 직접 해당 기업에 손해배상을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금이 늘어나는 게 아니다”라며 “기업인들이 손해배상 피소에 대한 우려로 과감한 의사 결정을 꺼리게 되는 부작용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담=서정명 산업부장 vicsjm@sedaily.com
주주 대표 소송은 주주(상장사는 회사 전체 주식의 0.01% 이상, 일반 법인은 1% 이상)가 투자 기업의 이사를 대상으로 잘못된 경영 의사 결정에 대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이다. 국민연금은 다음 달 중 주주 대표 소송을 제기하는 주체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일원화하고 적극적으로 소송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관리하는 기금운용위원회가 아닌 근로자, 지역 가입자, 사용자가 각각 3인을 추천해 구성된 수탁위가 소송 여부를 결정하는 칼자루를 쥔 것이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 1,000여 개가 곧장 사정권에 들었고 그 중 20~30곳이 이미 소송 대상 후보군으로 압축되고 있다. 특히 주주 대표 소송이 정부가 기업을 압박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재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부담이 되는 법 제도가 늘어나면서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당장 오는 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특히 이 법은 작업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 책임자에 1년 이상의 징역형 등 강한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해 자칫 경영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지난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이어 중대재해법까지 도입되면 이중 처벌 성격이 된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법 제정으로 경영진이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고 예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안전사고는 근로자 인식 수준이나 정부 산업 안전 정책의 제도적 한계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다”며 보완 입법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이 부회장은 사후 처벌 중심의 안전 보건 정책이 주요 선진국의 정책 방향에도 역행한다고 봤다. 오히려 사전 예방을 강화하는 편이 중대 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1년 이상의 징역형을 규정한 점도 해외 주요국과 다른 지점이다. 이 부회장은 “일부 해외 국가에도 중대한 안전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의 최고경영자(CEO)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있으나 모두 처벌의 상한선을 규정하고 우리나라처럼 하한선을 정해두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아직까지도 법령 해석과 적용이 불명확하다. 주요 기업들은 서둘러 안전보건책임자(CSO)를 따로 세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표이사가 법의 의무 주체 및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부회장은 “경영 책임자의 범위와 의무 내용, 원청의 책임 범위 등을 두고 해석상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며 “사실상 법원의 판례가 축적되기 전까지는 법 개정이 쉽지 않고 오히려 고용노동부 등 집행기관의 자의적 해석으로 법 위반 여부가 판단되고 경영자가 수사를 받는 상황만 반복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규정의 모호성으로 어느 기업도 처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일단 책임을 피하기 위해 대표이사를 맡지 않고 이사회 의장으로 빠지는 등 기업 이사회의 구성을 뒤흔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마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대 재해 발생이 상대적으로 빈번한 중소기업은 정작 사고 예방을 위한 투자가 쉽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2020년 사업장 내 안전사고로 사망한 882명 중 95.8%에 해당하는 845명이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발생했다. 이 부회장은 “중소기업은 2년간 지속된 코로나19 사태로 법을 준수하기 위한 안전 투자가 어렵다”며 “인력과 재정 여건이 취약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하고 법 시행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도 보다 충분히 부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노동 분야에서도 기업의 우려를 높이는 입법 사례가 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공공 기관 노동 이사제를 비롯해 정치권이 다수의 노동 관련 법안을 추진 중인 사실을 언급하며 “노동 관련 입법은 경제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지만 심도 있는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은 채 강행되고 있다. 이는 노사 관계 힘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경직성으로 인해 이미 신규 투자 유치나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9년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조사 대상 141개국 중 97위, 고용 및 해고 관행은 102위로 모두 최하위권을 차지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계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에는 해고의 자유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파업 시 대체 근로도 허용되지 않고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제도는 처벌 대상이 사용자에 국한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야말로 ‘사용자는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규제를 추가하기보다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동 입법이 추진돼야 하지만 현실은 되레 역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리나라는 시간이 갈수록 노동시장 경직성이 강화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면서 “유럽 주요국에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아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가 이 같은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 수를 노조 가입이 가능한 노동자 수로 나눈 노조 조직률은 2020년 말 기준 14.2%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부회장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노동이사제, 근로시간 면제 제도(타임오프) 등을 주요 현안으로 꼽았다. 먼저 현행 근로시간 면제 제도하에서는 노조 전임자 등이 노조 활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사용한 일정 시간을 유급 근로시간으로 인정받는다. 근로시간 면제 한도가 확대되면 월급을 받으면서 노조 일을 할 수 있는 조합원 규모도 넓어지게 된다. 노동이사제도 문제다. 경영상 의사 결정을 하는 이사회에 노동이사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다.
이 부회장은 “이사회는 원칙적으로 기업이나 기관의 대규모 투자·경영 계획 등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곳”이라며 “노동계 인사가 합류해 고용 보장과 같은 복지 조건만 요구하면 이사회에서 적시에 주요 결정을 내릴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노동이사제의 모델이 된 독일과 한국의 차이도 강조했다. 그는 “독일은 경영상 의사 결정을 하는 경영 이사회가 아닌 사후 감독을 주로 하는 감독 이사회에 노동이사가 참여한다”며 “경영 이사회 하나뿐인 우리나라와는 구조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당장 올해 7월부터 전국 공공 기관에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는데 민간 부문까지 적용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재계는 특히 경계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에 대해서도 이 부회장은 “우리나라 사업체 종사자의 4분의 1 이상이 종사하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의 존립 기반이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산업계를 덮친 원자재 수급난에 대해서는 국가가 나서야 할 품목과 기업이 직접 해결해야 할 품목을 구분하는 ‘투트랙’ 전략을 제안했다. 쉽게 말해 생산에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지는 않으나 일반 국민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수와 특정 산업군에서 핵심 원자재로 꼽히는 희토류의 공급 부족에는 서로 다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부회장은 “민생에 관련된 범용 제품에 대해서는 조달 품목으로 물량을 확보해두거나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국가가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특정 산업에 영향을 주는 경우에는 기업 스스로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정부가 도울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통상 차원에서는 언제 해결이 이뤄질지 모른다”면서 “희토류 등 핵심 원자재는 하나만 없어도 전체 생산을 좌지우지하는 중대한 문제인 만큼 기업에 맡기면 기존 네트워크 등을 활용해 어떻게든 해결해낸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정리=김지희 기자 ways@sedaily.com 사진=이호재 기자
He is… △1957년 서울 △1979년 제23회 행정고시 △1981년 노동부 사무관 △1982년 상공부 사무관 △1996년 미국 밴더빌트대학원 경제학 석사 △2005년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2008년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2009년 지식경제부 무역투자실장 △2010년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2017년 현대경제연구원장 △2021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