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많은 제주가 선택한 재생에너지는 풍력이다. 그리고 풍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는 그린수소를 만들어낸다. 지난 14일 7기의 풍력발전기가 완만한 능선을 타고 오밀조밀 모여 있는 제주 상명풍력단지를 찾았다. 제주 풍력발전의 활용에 대한 취재와 함께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곳이다.
하지만 상명풍력단지가 만들어낸 그린수소 대부분은 다시 바람에 날려 보낸다. 어이없게도 제주에는 지난해 12월 기준 등록된 수소차가 단 3대뿐이다. 당연히 충전소도 없다. 전국 수소차 등록 대수가 2만 대에 육박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실적이다. 그렇다고 생산된 수소를 육지로 보낼 방법도 없다. 그린수소 생산 실증 사업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제주 내 친환경차 보급이 전기차 위주로 진행돼 생산한 수소를 활용할 방안이 없었다”며 “올해 말 수소버스 11대가 제주에 들어오고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서 관용 수소차 40대를 도입한다고 하니 여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탄소 중립에 확대되는 재생에너지로 그린수소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활용 방안부터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수소 차량이 없는 제주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상징성이 있는 만큼 아무리 소량이라도 액화나 암모니아를 활용한 육지 운송 실증이나 제주 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서의 혼소 발전 등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했다”고 밝혔다.
제주는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의 테스트베드다. 일찌감치 탄소 제로라는 목표를 세우고 재생에너지 확대, 친환경차 보급 정책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전기차용 하늘색 번호판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하지만 지금 제주는 재생에너지 설비 과잉에 따른 출력 제한 조치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린수소 생산 역시 설비 과잉을 해결해보자는 의도로 진행됐지만 정작 활용 방안도 마련하지 않고 반쪽 테스트만 진행한 셈이다.
제주의 재생에너지 과잉은 출력 제어라는 아이러니한 조치를 만들었다. 김영환 전력거래소 제주본부장은 “지난해부터 제주에 태양광발전을 새로 진행하겠다는 사업자가 찾아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라’고 권유하고 있다”며 “적정 수준의 신재생에너지 용량을 채운 데 이어 초과 발전으로 출력 제어까지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허용 가능한 초과 발전까지 고려한 제주 내 신재생에너지 설비 수용 용량은 452㎹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기준 제주 내 신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은 828.8㎹로 늘었다. 증가세의 대부분은 태양광발전이다. 풍력발전 설비 용량이 2019년 이후 290㎹ 수준에서 정체된 가운데 태양광발전 설비 용량은 2019년 293.8㎹에서 2021년 4분기 525.6㎹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과잉 생산에 출력 제어는 급증했다. 2015년 3회, 2018년 15회였던 제어 횟수는 2019년 46회, 2020년 77회로 급증했다. 그나마 지난해에는 코로나19에 제주 관광객이 늘고 전남 진도·해남 등으로의 잉여 전력을 역송하며 64회로 소폭 감소했다.
민간 사업자가 대부분인 태양광발전이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을 늘렸지만 출력 제어는 대부분 풍력발전이 맡는다. 출력 제어 명령에 따라 발전에 활용하지 못한 전력은 2020년 19.4GWh, 2021년 12.0GWh에 달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2년간 50억 원의 손해를 봤다. 게다가 현 전기사업법에는 출력 제어 관련 근거가 없다. 출력 제어가 민간 태양광사업자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제주에서 발생한 과잉 출력, 그린수소 방출 등의 문제는 재생에너지 확대로 대한민국 전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그린수소 생산 및 활용, 전력 과잉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체계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제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16.2%로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서 제시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30.2%)의 절반을 약간 넘긴 수준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