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통신조회) 사실을 당사자에게 통지하도록 한 법안에 대해 법무부가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차처(공수처)의 ‘통신사찰 논란’이 장기화되고 있음에도 법무부는 “통신조회는 기본권침해 정도가 낮다”며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18일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실이 제출받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법무부(검찰)의 공식 입장 및 의견’에 따르면 법무부는 “통신자료 제공사실 통지 제도는 도입 시 우려되는 부작용 등을 고려해 입법정책 측면에서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당사자에게 통신자료 제공사실을 통지하는 절차를 의무화할 경우 수사력 저하가 불러오는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2012년 8월 헌법재판소 결정을 제시하며 “통신자료 취득행위는 강제력이 개입되지 않은 임의수사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입자정보 조회에 불과해 기본권침해 정도가 낮다”면서 “이를 넘어 통화내역까지 확인하는 경우에는 이미 통지가 이뤄지고 있다”며 통신자료 오남용에 따른 인권침해 가능성을 일축했다.
법무부는 또 “시스템 구축과 통지에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소요되는 데 반해 가입자가 언제든지 직접 통신사에 열람을 요청할 수 있어 그 필요성이 낮다”면서 “범죄관련성이 높은 자에 대한 통지는 수사 초기에 범죄를 은닉하게 하고, 범죄관련성이 낮은 자에 대한 통지는 수사대상에 올랐다는 불필요한 오해와 불안감을 유발하게 된다”며 개정안의 단점을 열거했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에 따라 이동통신사는 수사기관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 등이 포함된 통신자료를 법원 영장 없이도 수사기관에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매년 검찰과 경찰·국정원 등에 수백만건의 개인정보가 당사자도 모른 채 넘어갔고, 이러한 수사관행을 공수처도 받아들여 ‘무더기 사찰’ 논란으로 이어졌다.
허 의원이 2020년 11월 대표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수사기관의 통신조회 남발을 억제할 목적으로 당사자에게 통신자료 제공사실을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한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번 법무부와 함께 경찰청도 “통신자료 확보 사실이 당사자에게 알려지면 증거인멸, 도주우려가 높고, 공범수사 등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앞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공수처발 통신사찰 논란이 불거지자 "더 논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정치권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되면 법무부도 대안을 만들어 제시할 것"이라며 제도 개선의 의지를 내비쳤다. 박 장관은 "과거에도 수십만건씩 검경에 의해 소위 '영장 없는 조회'가 있었다"며 "그것이 아무 문제없이 이뤄지다가 공수처 수사에서 그 대상이 대검찰청과 언론인이 되니 사찰 논란이 벌어졌다"고 문제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법무부가 정작 “통신조회는 기본권침해로 보기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점이 드러나면서 애시당초 수사관행을 개선할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