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금융일반

대출 '경우의 수'만 144가지…"고차방정식 헤매다 전세만 전전"

■사전청약도 '난수표'…누더기 제도에 국민만 피해

제도개선커녕 규제만 양산하다

금융·세제·청약 등 얽히고설켜

예외 만드는 세금 중과 없애고

차기 정부 초기부터 준비 필요

정책구조 단순화작업 서둘러야





# 서울에 거주하는 무주택자 40대 직장인 A 씨는 최근 분양 예정 단지를 찾았다가 분양 가격이 9억 원이 넘는다는 얘기에 고민이 커졌다. 상담사가 “시공사 보증으로 중도금 집단 대출 준비를 하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고 답변했기 때문이다. A 씨는 “분양가가 9억 원 이상이면 은행 대출이 안 되기 때문에 시공사 보증으로 대출이 가능한지가 중요한데 확실하지 않다고 하니 청약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면서 “청약을 한번 넣으려 해도 자격이 되는지, 대출이 되는지 복잡하고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하소연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20여 차례나 부동산 정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금융·세제 등 다른 분야까지 집값 안정 수단으로 끌어쓰면서 관련 제도들이 모두 난수표가 됐다. 국민들은 얽히고설킨 그물망에 걸려 이사 한번 하기가 어려워졌다. 세무사·공인중개사 등 현업 실무자들도 부동산 관련 각종 규제를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는 대규모 주택 공급 외에 규제 단순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고차방정식을 넘어 ‘로켓공학’ 수준이 된 부동산 정책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역별로 부동산 시장을 규제하기 위해 마련한 규제 지역의 종류만 해도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등 3종류에 이른다. 이 지역들은 구역 지정의 효과가 각각 다른데다 지정권자도 투기지역의 경우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머지는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여기에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주택 거래 제한 용도로 도입하고 분양가상한제 지역까지 도입돼 어느 지역이 어떤 규제를 받는지 파악하는 일부터가 까다로워졌다. 청약제도만 하더라도 지난 1978년 제정 이후 153차례 개정됐으며 지난 한 해 동안 개정된 횟수도 8차례에 이른다. 계약갱신청구권 등 전월세제도도 준비가 덜 된 채 신규 도입되면서 분쟁만 5배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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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 정부가 금융 분야를 부동산 수요 관리의 핵심 도구로 쓰면서 규제는 더욱 얽히게 됐다. 은행권에 따르면 현재 주택 매수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은행원과 고객이 마주하게 되는 경우의 수만 기본 144개다. 여기에 서민 실수요자인지 등 다른 조건을 더하면 경우의 수는 더욱 늘어난다. 물론 이는 매매시 대출이고 전세자금 등 다른 대출에 대한 신설 규정도 즐비하다는 것이 현장의 설명이다.

부동산 세제 역시 마찬가지다. 분할 소유한 집이 세법상 주택에 포함되는지를 파악하는 경우만 하더라도 양도세의 경우 대지분자 1인을 제외하면 계속 제외되지만 종부세에서는 20%이하, 3억 원 미만 주택일 경우 무주택에 해당한다. 취득세에서는 별도 기준이 없어 1%여도 취득세는 낸다는 것이 세무 업계의 설명이다. 사실상 일반 국민들은 이미 접근 자체가 어려워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재의 부동산 정책 형태가 지속 불가능한 구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민태욱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논문에서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보조 수단인 세제와 금융·분양 정책을 과도하게 이용한 결과 부동산 관련 정책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운용되고 그 내용도 몹시 복잡하게 됐다”며 “이번 정부의 부동산 관련 세제·금융·분양 정책은 지속 가능성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에 새 정부가 부동산 규제 단순화를 주요 부동산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팀장은 “그동안 집값의 안정을 위해 가능한 정책을 모두 가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복잡한 세금 구조가) 계속 갈 수는 없다”며 “세금의 경우 중과를 도입하면서 예외 규정을 만들게 돼 복잡해지는 측면이 큰 만큼 중과세를 없애는 게 단순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화 검토 시점은 부동산 사이클과 관계 없이 정권 초기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우 팀장은 “시행 시기는 집값이 확실한 안정세로 돌아선 후로 조절할 수 있지만 그때만 생각하고 준비를 늦춘다면 다시 상승 사이클이 돌아올 수 있다”며 “세법 등은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은 “집권 초기 세제와 금융 로드맵을 발표하고 준비해야 현실적인 준비가 이뤄질 것”이라며 “시장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 구조를 단순화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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