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검찰 권력 견제와 정치적 중립성 확립이다.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경찰에 수사 종결권을 부여했다. 반면 검찰 수사는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 사업, 대형 참사 등 6대 대형 범죄로 한정했다. 1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는 연착륙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울경제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변호사 1,4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동 설문 조사에서 10명 가운데 7명이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수사·조사 환경을 ‘부정적’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긍정적’이라는 답은 7.54%(110명)에 그쳤다. 경찰이 사건을 송치한 후 검찰 수사 수준에 대해서도 41.33%(603명)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오히려 수사·조사 환경이 뒷걸음질 쳤다는 평가다.
서울경제가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1년’을 주제로 최근 개최한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당초 취지는 공감하는 만큼 시행 이후 시간이 짧다는 점 등을 고려해 문제점을 면밀하게 살펴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독립성이 보장되는 수사권조정위원회 설치 △수사 리뷰 시스템 정착 △수사 공정·전문성 향상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시행 이후 불과 1년…성패 단정하지 말고 보완에 주력해야=전문가들은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단 1년이 지난 현 상황에서 제도의 실패냐 성공이냐를 단정하기보다는 시행 과정을 살펴보며 제도를 보완할 것을 공통적으로 주문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평가 자체가 변호사나 피의자·피해자 등이 느끼는 주관적인 판단인 만큼 시행 과정상 오류나 문제점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분석이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은 “제도 시행 초기 이의 신청, 재수사, 보완 수사 등 통제 장치나 시도들이 거의 없었고 지난해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제도가 도입된 만큼 1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수사의 질이 낮아졌다는 건 낯선 제도에 대한 당혹감에 가까워서 실증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검경 수사권 조정이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측면이 있다 보니 직무 범위가 모호하거나 중첩·혼용된 면도 있다”며 “수사기관 사이 균형이 이뤄지지 않고 견제만 남은 상태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제도가 당초 의도대로 운용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지나친 낙관이나 섣부른 비관은 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정적인 설문 조사 결과가 오롯이 수사권 조정의 결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수사권 조정으로 인한 경찰의 책임감·부담감과 서류 작업의 증가, 내부 및 보완 수사 절차의 복잡화 등이 업무량의 증가와 수사 부서 기피 현상을 가져온 데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수사권 조정은 점진적 개혁…‘디테일’ 채워야=전문가들은 검경 수사권 조정의 제도적 안착을 위해 구체적으로 보완할 점이 무엇인지 분석·제시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찬희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은 “우리 사회를 보면 정치권에서 제도 도입은 신속하게 이뤄지지만 이후에는 다소 방치되는 경향이 강하다”며 “검경 수사권 조정이 법이라는 큰 틀에서 마련된 만큼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디테일을 채우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동희 경찰대 치안대학원장은 “검찰 개혁 자체가 ‘점진적 개혁’이라는 성격이 강하다”며 “부족한 부분은 보이지만 논의를 통해 경험을 쌓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검찰은 전 세계적으로도 막강한 권한을 지닌 독특한 역사를 갖고 현재에 이르렀다”며 “광복 후 75년 만에 이뤄진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이 완벽한 단계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검찰이 ‘기소 기관’이라는 본연의 모습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경로 의존성’에 따라 그동안의 형사 사법 체계가 일정한 경로를 형성해왔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변화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합의를 통해 법을 만든 만큼 몇 년에 걸쳐 단계별로 상황을 관찰하고 찾아낸 세부적 문제는 고쳐 나가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이) 지향하는 바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사 조정·리뷰까지…외부 견제 수단 필요=전문가들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 국내 법조·수사 환경에 연착륙할 수 있는 방안으로 외부 견제를 공통적으로 꼽았다. 독립성이 보장된 수사권조정위나 수사 리뷰 시스템을 설립하고 사건이 법과 상식에 따라 검경에 제대로 맡겨져 수사되고 있는지 또 부실은 없는지 철저히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 전 회장은 “검찰 수사권을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나눠줬는데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한 보완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검찰·경찰·공수처 사이 수사 영역 다툼이 생길 시 조율할 수 있는 수사권조정위가 대통령 산하에 한시적으로라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사 영역이나 권한을 두고 수사기관 간 충돌이 생길 경우 신속하게 결정해줄 헌법재판소와 같은 기관이 설립돼야 검경 수사권 조정이 안착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전 회장의 생각이다. 특히 수사권조정위가 설립될 때 우선 고려돼야 할 필요충분조건으로 여야 정치권의 고른 추천에 따른 위원 구성과 독립성 보장을 꼽았다.
이 교수는 수사 과정을 되돌아보는 견제 수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검찰과 경찰·공수처 등이 사람으로 구성된 조직이기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오류를 저지를 수 있는데 지금은 이를 방지하기보다 질책하려고만 한다”며 “오류 방지를 위해서는 외부에서 사건을 리뷰하는 시스템을 설립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검찰과 경찰·공수처 등 수사기관의 영역 다툼과 이해 충돌을 법과 상식에 따라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이 원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안착되기 위한 조건으로 검찰권 남용 방지를 위한 수사와 기소의 분리, 그리고 수사권의 다원화를 꼽았다. 이 원장은 “개혁의 목적은 분권과 견제에 있고 수사기관의 다원화와 더불어 수사의 공정성·전문성은 물론 인권 보장을 하나하나씩 단계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며 “검찰은 6대 범죄의 직접 수사를 내려놓고 공수처·선거관리위원회·금융감독원 등으로 수사 권한을 분산시켜야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