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도다리

이생용 作

쑥 향기를 제일 먼저 알아채는 건



늘 저승 문턱에 앉았다고 말하는

가사리 김 영감의 입맛

밭 가장자리 쑥 무리가

봄이요, 봄, 하며 목소리 높이자

화들짝 고개 드는 오랑캐꽃까지 봄소식 분분한데

지난봄 도다리쑥국의 달달함이

입속에 아른거린다



너무 오래 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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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렁그렁 게거품 입가에 내뱉더니

닫은 입 열어 주는가

김 영감 낚싯대가 은근슬쩍

살맛을 낚아 올린다

도다리여





저승 문턱에 앉은 김 영감이 쑥 향기를 먼저 맡는 것은 당연하다. 저승 문 열리는 줄 알았더니 이승 문 열린 게 아닌가. 푹 꺼지는 줄 알았더니 쑥 올라오는 게 아닌가. 지하철도 내린 다음 타는 법이다. 저승에 갔던 봄풀들 와르르 쏟아져 나오니 어쩔 수 없는 척 꽃피는 한 시절 더 놀다 갈 수밖에. 물속에서도 한 소식 펄떡이며 올라온다. 생면부지인 쑥과 도다리가 천생연분인 줄 누가 알았을까. 따뜻한 냄비 아랫목에서 보글보글 정담을 나눌 동안 김 영감은 입맛이 돌 것이다. 죽을 맛이 살맛인 것을 절절이 알 것이다. 봄뿐인가. 여름 민어, 가을 전어, 겨울 넙치가 기다리니 삼면이 바다인 이 땅에서는 죽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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