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부분 금지하는 데 합의했다.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에 반대했던 헝가리의 원유 수입을 최대한 유지하되 올해 말까지 EU에서 수입하는 러시아산 석유 90%가량을 차단하기로 한 이번 조치로 국제 유가는 다시 급등했다.
30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EU 정상들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고 해상 수송을 통한 러시아산 원유·석유 제품의 수입을 막는다는 데 합의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트위터에서 "이는 러시아로부터 수입되는 석유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며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라는 최대의 압박"이라고 밝혔다.
석유 완전 금수는 불발됐지만 이번 조치는 러시아가 EU에 수출하는 석유의 90% 이상을 막는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EU가 수입하는 러시아산 석유의 약 3분의 2는 유조선으로, 나머지는 드루즈바 송유관으로 폴란드·헝가리·독일 등에 운송되는데 이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가장 많은 석유를 수입하는 독일과 폴란드가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이미 밝혔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해상 수송을 통한 수입과 함께 독일·폴란드의 금수 조치가 실행될 경우 연말까지 EU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이 90%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이로 인해 러시아가 연간 최대 100억 달러의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로뉴스도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 하루 평균 원유 220만 배럴과 휘발유 등 정제 제품 120만 배럴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했다"면서 "이번 조치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제재에서 가장 대담하고 중대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EU가 석유 ‘부분’ 금수에 그친 것은 완전 금수 조치에 반대해온 헝가리를 의식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러시아산 원유 의존도가 65%에 달하는 헝가리는 그간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로 발생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완전 금수 조치에 결코 동의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혀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협정은 EU와 헝가리가 석유 금수 조치를 두고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이뤄졌다"며 "헝가리는 드루즈바 송유관에 문제가 생길 경우 다른 방식으로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한다는 보장을 EU로부터 받았다"고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헝가리 외에 체코·슬로바키아도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산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로 당분간 유가는 더욱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EU의 발표 이후 브렌트유 7월물은 전일 대비 1.9% 오른 배럴당 124.02달러, 8월물은 2.16% 상승한 120.05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한 것은 약 2개월 만이다. 거래 플랫폼인 필립노바의 아브타르 산두 원자재 수석매니저는 "미국의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원유 수요가 늘어난 가운데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추가 수송 금지 조치는 이미 긴장된 공급을 더욱 팽팽하게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기에 상하이의 코로나19 봉쇄 해제 소식도 유가 상승을 부추긴 요인이다. 아울러 EU 내 일부 국가들이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해 저렴한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사들이게 돼 시장에서 유가 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도 계속되며 국제 에너지 시장에 또 다른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날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은 루블화 결제를 거부한 네덜란드 가스 무역 회사 가스테라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31일부터 중단한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앞서 루블화 지불 거부를 이유로 폴란드·불가리아·핀란드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한 데 이은 조치다. CNN에 따르면 덴마크 에너지 기업인 외르스테드도 같은 이유로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공급이 끊길 것으로 보인다.
한편 EU는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제외하고 추가로 러시아 국영 방송사 3곳과 우크라이나 내 전범 책임자를 제재하는 조치 등을 6차 제재안에 포함하는 데도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