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경제 위기는 이전과 차원이 다를 수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거의 13년간 엄청난 돈이 풀렸고 이것이 증시·부동산·코인 등 자산 시장의 버블을 키웠는데 아시다시피 지금 빠지고 있어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 미국의 초긴축 등과 맞물려 우리 경제에 돌이키기 힘든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17일 전직 국책연구원장의 현실 진단은 냉혹했다. 과거의 위기가 ‘정답이 있는 퍼즐’이었다면 현 위기는 팬데믹과 유럽 전쟁, 기술 패권과 맞물린 무역 분쟁, 긴축으로의 통화 정책 급전환 등 대외 변수로 초래돼 해법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시장은 하루 하루가 다르다. 새파랗게 질렸다는 표현이 빈말은 아니다. 이날 0.43% 하락한 코스피지수는 장 초반 1년 7개월 만에 2400선이 붕괴됐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장중 3.7%를 돌파했다. 전날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지수가 1년 5개월 만에 3만 선을 밑돌고 나스닥지수가 4% 급락한 데 따른 여파다. 국내 증시는 미국만 쳐다보는 ‘천수답 증시’가 된 지 오래다. 에너지 빈국인 데다 무역의존형 경제라 아시아 증시 가운데서도 가장 취약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특정 진원지도, 이런 충격을 흡수할 구심점도 없는 위기 △중동·아프리카 중심의 국지전이 아닌 경제 주류인 유럽 내 전쟁이 사태를 더 악화시킨 위기 △재정 여력이 바닥난 데다 인플레이션 위기가 겹쳐 가용 수단이 없는 위기 △이전보다 더 심해진 정치권의 극한 대립 등 변수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다 보니 대책도 마땅치 않고 나오는 대책이 실기하거나 정교하지 못할 경우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에너지 강국인 러시아와 곡창 지대를 가진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면서 전 세계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마저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 카드를 꺼내 1800조 원 넘는 가계부채와 전체 기업의 30%가량에 달하는 한계 기업을 가진 우리 정책·통화 당국의 고민을 키우는 실정이다.
다급한 우리 정부는 ‘민간 주도 성장’을 위한 규제 및 감세 패키지 중심의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았다. 고용과 투자
주체인 기업의 활력을 높여 복합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고육책이다.
하지만 야당은 ‘부자 감세’라는 프레임으로 공격에 들어갔다. 법 개정이 필요한 법인세 완화 등 각종 정책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할 수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위기가 본격화하면 취약 계층부터 타격을 받는다”면서 “정치적 득실을 넘어 협치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큰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