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대대적 규제혁신 작업에 나섰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신설하고 총리와 민간대표가 공동 단장인 ‘규제혁신추진단’을 운영하며, 각 정부 부처와 경제단체 등에 ‘규제전담조직’을 설치해 개혁과제를 발굴한다고 한다. 또 피규제자 입장에서 규제개선을 도모하는 ‘규제심판제도’도 도입한다. 그러나 역대 정부에서 집권 초기에 거창하게 시작한 규제완화 작업이 용두사미로 끝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새 정부 규제개혁의 성공을 위해 과거 실패 원인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규제개혁이 성공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규제개혁의 추진과정에서의 주도권이 규제를 하는 주체인 공무원에게 맡겨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정부주도 경제운용을 해왔기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공무원의 힘이 막강한데, 그 힘의 원천이 바로 규제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퇴직 후에도 산하기관이나 로펌에서 높은 급여를 받으면서 노년을 편하게 살 수 있다.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방식으로 제대로 된 규제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두 번째 이유는 규제개혁으로 이득을 보는 다수는 조용한 반면, 규제개혁으로 손해를 보는 소수는 이를 거의 목숨 걸고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정치적 이득이 돼야 하는 규제개혁이 실제로는 정치적 난제가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세계적인 붐인 원격진료가 우리나라에서는 의사집단의 반대로 20여년간 시범사업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필자는 국회의원 시절인 1993년 6월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을 주도한 적이 있다. 특별법 제정으로 이득을 보는 다수의 기업인들은 필자의 노력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반면, 규제 폐지 또는 완화로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소득이 감소하는 특정 집단은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규제혁신이 어려운 이유를 실감했다.
세 번째 이유는 국민 입장에서 규제개혁에 앞장서야 하는 정치권이 실제 규제개혁에 미온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규제개혁으로 손해를 보는 소수는 목소리가 큰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후자의 편을 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정권 초기에 규제개혁위원회 설치를 거창하게 홍보하려 하나, 규제의 대못을 뽑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낮아지게 된다.
정권마다 많은 규제를 완화한 것이 사실이나 이와 동시에 새로운 규제를 양산하기 때문에 규제의 총량은 줄지 않고 있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 의원입법이 쏟아지고 있는데, 대다수 의원입법이 규제완화보다는 규제강화 성격을 띄고 있다. 특히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다량의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 시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이 같은 ‘강력한’ 처벌 조항을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한국에 체류하는 다국적 기업 CEO 대다수의 의견이다.
새 정부의 규제혁신과 관련해 걱정되는 점은 외화내빈(外華內貧) 가능성이다. 규제개혁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해야 지속적 추진이 가능하다. 초기에 대표적 대못 몇 개를 확실히 뽑아 그 혜택을 다수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원격진료를 제도화하고 보건 및 복지서비스에 관한 각종자료를 온라인화해서 덴마크, 핀란드와 같은 ‘디지털 복지(e-welfare)’ 체계를 구축해 활용한다면 모든 국민이 규제개혁의 긍정적 혜택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수도권규제를 기존의 ‘반-성장(anti-growth)’에서 ‘성장관리(growth management)’ 구조로 전환한다면, 첨단산업 분야에서 필요한 인재 확보는 물론 외국기업 유치 및 한국기업의 유턴 현상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집권 초기에 대표적 ‘대못’의 과감한 제거를 통해 새 정부 규제혁신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제고하고, 기업활동 활성화와 국민생활 편의성 제고를 동시에 이루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