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 52시간으로 제한됐던 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유연하게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직장인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일단 월 단위 총 근로시간은 변함없는 선에서 주 단위 연장 근로시간을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지만 근로시간 관리가 얼마나 실효성 있게 이뤄질지를 두고 논쟁이 한창이다.
24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대다수 직장인들은 ‘월 단위 총량 관리’가 일선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카카오에서 근무하는 김 모 씨는 “한 주에 연장 근로시간을 꽉 채워 최대 92시간까지 일을 한다고 해서 회사에서 나머지 3주간의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을 넘지 않도록 보장해줄 리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제약회사에 재직 중인 박 모(25) 씨는 “오후 6시가 넘으면 컴퓨터가 일괄적으로 종료되는 등 그동안 주 52시간제가 철저하게 지켜졌는데 92시간까지 시간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게 되면 근무시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지 우려된다”며 “오히려 근무만 많이 하고 처우는 나빠지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 52시간에 찬성하는 쪽은 제도 시행으로 근무시간이 줄고 임금은 크게 변하지 않은 고임금·대기업 종사자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앞서 2018년 직장인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의 설문조사에서도 “52시간제 적용 가능하다”고 응답한 상위 3곳이 SK텔레콤·삼성디스플레이·KT로 나타나는 등 첨단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대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정부가 개편안으로 검토 중인 주 최대 92시간에 찬성하는 직장인들도 있었다. 대전에 근무지를 둔 이 모 씨는 “회사가 자율출퇴근제를 도입해 평일에 일을 몰아서 끝내고 금요일에 퇴근 시간을 앞당겨 본가가 있는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며 “92시간제로 자율성이 높아지면 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월별 업무량 편차가 큰 직장에 다닌다는 A 씨는 “52시간제가 시행된 후 실제로는 그 이상을 일해도 52시간으로만 기록해 야근비도 제대로 못 받아 배달로 투잡을 뛰는 동료들이 생길 정도였다”며 “이번 기회에 연장근로시간 제한도 함께 완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애초에 주 52·92시간에 대한 논의 자체가 딴 세상 이야기라는 이들도 있었다.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임 모(39) 씨는 “애초 주 52시간제가 도입될 때도 그냥 일하는 시간 중에서 대가를 받는 시간이 52시간인 거라고 생각했다”며 “변호사라는 직업이 전문직·고임금이다 보니 일을 많이 해도 된다는 업계에 만연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경영전략 컨설턴트 최 모(31) 씨는 “애초 계약 수주가 프로젝트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일과가 3개월간 밤낮없이 일하고 1~2주 쉬는 구조로 될 수밖에 없다”며 “52시간제가 처음 도입될 때부터 개별 업종의 특성은 전혀 고려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