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동십자각]우주거버넌스, 정치 논리 배제해야





실패 뒤에는 책임론이, 성공 뒤에는 논공행상이 뒤따르는 게 인간사의 이치다. 한국 우주개발의 길을 연 누리호 2차 발사의 성공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누리호 성공의 공을 세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윤석열 정부의 공약 사항인 항공우주청이 벌써부터 자신들의 산하기관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고무돼 있다.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2차 발사 성공 직후 항공우주청과 관련해 “과기정통부를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조직 확대는 곧 승진 기회와 권한의 확대를 의미하니 당연한 일이다. 지역사회도 마찬가지다. 경남 사천과 대전은 항공우주청을 자신의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항공은 사천에, 우주는 대전에 조직을 두자는 지역 배분 논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민간 중심의 우주개발에 나서겠다는 목표와 상충된다. 항공우주청이 과기정통부 산하에 설립된다고 가정해보자. 항공우주청은 예산·인사·정책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일일이 상급 기관인 과기정통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어떤 정책이나 연구개발(R&D), 민간과의 협력을 하려면 과기정통부·기획재정부·총리실 등 수많은 기관의 간섭과 통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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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관이 보고서를 작성하면 과장이 뜯어고치고 국장이 뜯어고치고 차관이 뜯어고친다. 결국 장관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는 맹탕이 된다’는 공직 사회의 비효율과 낭비가 항공우주청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것이다.

부처 아래 산하 조직이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는 물론이고 장관 한 명 교체될 때마다 정책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 부처보다 더 경직적인 청 단위 정부 조직으로는 창의성과 혁신을 핵심으로 하는 뉴스페이스를 실행할 수 없다. 통계청·국세청·조달청 등은 효율성이나 창의성보다는 규정에 따른 업무를 하는 조직이니 문제가 없지만 우주개발을 총괄하는 항공우주청은 성격 자체가 다르다. 더구나 과기정통부는 기초과학 담당 부처이지 우주산업화와는 거리가 멀다.

우주강국의 거버넌스를 보자.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백악관 직속이며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조직이다. 일본은 내각에 우주개발전략본부를 두고 총리가 본부장을 맡아 범부처를 망라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예산을 집행해야 하고 실패를 용인하며 규정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민간의 창의성을 최대한 도입하려면 간섭하는 상급 기관이 최소화돼야 하고 최고 결정권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입지도 마찬가지다. 항공우주청은 최고의 인재들이 언제든 모여 다양한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곳, 핵심 우주기업의 본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야 한다. 지역 주민 달래기용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항공우주청’보다는 대통령 산하 비상설 조직인 국가우주위원회를 상설 조직화하고, 산하에 우주본부 등 실행 기구를 두는 방향으로 우주거버넌스를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예 항공과 우주를 분리한 뒤 대통령 직속으로 우주청을 만들자는 논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포럼에서 “우주산업 활성화 정책을 적극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부처 이기주의나 지역 배분과 같은 정치 논리로는 이 약속을 지킬 수 없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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