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태양광 잉곳 100%·천연흑연 90% 수입…中 몽니땐 산업망 붕괴

[對中 통상정책 리셋하라] <상>첨단산업 곳곳 '제2 요소수 폭탄'

반도체·배터리·태양광 3대 미래산업 주원료 중국산에 잠식

美 대중무역 제재 강화땐 '칩4' 트집 잡아 韓에 불똥 튈수도

"수입선 다변화하고 新 통상전략 수립 등 혁신적인 대책 절실"


불화수소는 주로 반도체 공정 이후 묻은 불필요한 찌꺼기를 씻어내는 데 쓰인다. 중국산 불화수소는 우리 반도체 산업계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고 의존도도 높다. 국내 소재 업체들은 투박한 중국산 불화수소 원액(무수불산)을 구입한 뒤 이를 가공해 새로운 소재를 만든다. SK스페셜티의 주력 제품인 삼불화질소(NF3)의 주요 원료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2019년 일본의 불화수소 수출 규제 이후 국산화에 성공한 한국 회사들도 중국산 불화수소를 가공해 고순도 액체를 만들어낸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에서도 일부 무수불산 물량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양이 중국에서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며 “대부분의 일본 불화수소 업체들도 중국 원자재를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올 2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격이 치솟은 반도체 공정 소재 네온 역시 중국의 영향력이 남다르다. 네온은 빛으로 반도체 회로를 찍어내는 노광 공정의 핵심 소재로, 공급이 끊길 경우 공정이 멈출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우리나라 업체들은 주요 네온 생산국인 우크라이나에서 제품 공급이 차단되자 우회로로 중국을 택했다. 기존에도 중국 제품을 이용해왔으나 전쟁 장기화로 6~7월 중국 소재 의존도가 크게 높아진 모습이다.

삼성·LG·SK 등이 미래 사업으로 점찍고 육성 중인 배터리 분야에서도 중국 원료의 존재감은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수산화리튬의 수입액 17만 4829만 달러 가운데 중국 수입액은 14억 7637만 달러로 84.4%를 차지했다. 2018년 64.9%였던 수산화리튬의 중국 수입의존도는 매년 꾸준히 높아져 지난해 83.8%를 기록했다. 코발트의 중국 수입 비중은 2018년 53.1%에서 올해 81%까지 올랐으며 같은 기간 천연 흑연도 83.7%에서 89.6%까지 증가했다. 배터리 분야의 중국 소재 잠식은 국내 무역수지 악화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미래 에너지 산업 중 단연 주목을 받는 태양광 분야의 경우 이미 수년째 중국이 원재료 수입 시장을 점령한 모습이다. 올 1~7월 우리나라로 들어온 태양광용 잉곳은 1538만 달러(약 211억 원)로 집계됐다. 수입된 태양광용 잉곳 전량이 중국에서 들어왔다.

관련기사



중국산 태양광용 웨이퍼 수입액은 3억 1501만 달러(약 4322억 원)다. 중국산 웨이퍼는 전체 수입액의 92% 수준이다. 태양광용 웨이퍼와 잉곳은 올해 내내 극심한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태양광 패널은 거대한 폴리실리콘 덩어리인 잉곳을 잘라 만든 웨이퍼 위에 각종 장치를 달아 모듈 형태로 제작한다. 따라서 두 원료는 태양광 패널의 핵심 기반이 되는 재료다.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 등 소위 태양광 산업 ‘업스트림’ 소재들은 수년 전부터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세계 톱5 잉곳·웨이퍼 업체는 중국이 독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 역시 이 흐름을 비켜가지 못했다. 재료 국산화를 추진했던 국내 업체들은 사업을 정리하거나 규모를 줄이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한국의 첨단 산업에서 중국 소재 의존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가격 경쟁력을 선점한 중국의 장악력이 갈수록 강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용 불화수소가 대표적이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원료 중에서도 유해성이 큰 물질로 분류된다. 따라서 각국에서 타이트한 환경 규제로 생산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중국은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원재료의 채산성도 좋아 생산량을 더욱 확보해나가는 모양새다.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은 세계 각지의 광산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전 세계 배터리 원재료 제련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태양광의 경우 석탄화력발전으로 만든 값싼 전기요금으로 원재료 정제 공정 등에서 원가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이성우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통상본부장은 “반도체·배터리 소재 등은 중국산 제품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뛰어나 공급처를 다각화하는 것이 어렵다”며 “특히 글로벌 경기 둔화나 국제 정치적 요인으로 교역 구조 변화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국의 대중 무역 제재가 강력해진다면 중국 당국이 각종 원재료 카드를 꺼내 들면서 한국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주장도 고개를 든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주도하는 칩4, 인플레이션감축법 등에 대해 한국 정부가 호의적인 입장을 나타낼 경우 중국이 태양광 소재를 무기로 으름장을 놓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수입선 다변화, 새로운 통상 전략 등 혁신적인 대책을 시급하게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지상 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최근의 대(對)중국 무역수지 악화 현상은 거시경제, 한중 산업구조에 따라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핵심 소재의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방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해령 기자·전희윤 기자·김기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