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가상자산 투자자 A 씨는 2020년부터 국내에 유령 회사 7곳을 세웠다. 화장품을 수입하는 것처럼 송장을 꾸미고 수입 대금으로 위장한 자금 5000억 원을 해외 페이퍼컴퍼니에 보냈다. 이 돈은 해외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매수하는 데 쓰였다. A 씨는 매수한 가상자산을 시세가 더 높은 국내 거래소에 되팔아 50억 원 규모의 시세 차익을 남겼다.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A 씨의 행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가상자산 관련 불법 외환 거래 기획 조사’를 실시해 A 씨를 포함한 16명을 외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고 지난달 밝혔다. 조사 결과 무역 대금으로 위장한 송금 외에 불법 송금 대행, 불법 인출 등의 방식도 동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적발된 불법 외환 거래 규모는 총 2조 715억 원에 달한다.
윤태식 관세청장은 “금융감독원과 금융정보분석원으로부터 입수한 의심 거래 정보를 기반으로 올 2월부터 불법 외환 거래 기획 수사를 진행해왔다”면서 “금감원으로부터 추가로 전달 받은 거래 정보 규모가 5조 4000억 원에 달하는데 이 역시 불법 외환 거래 소지가 큰 것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윤 청장은 “불법 외환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기업 ‘마이데이터’ 플랫폼을 통해 기업의 수출입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이 마이데이터 플랫폼에 수출입 자료를 올리면 당사자의 사전 동의를 받고 은행이 관련 실적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윤 청장은 “은행 입장에서는 송금 의뢰인이 제출한 인보이스와 관세청이 제공하는 수입 실적을 대조해 사전 송금을 보다 엄밀하게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청장은 다만 “불법 거래를 막는다는 이유로 외환 거래에 대한 규제 수위를 과도하게 높이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윤 청장은 “사고가 발생하면 문제를 원천 봉쇄한다며 과한 규제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면서 “불법 외환 거래에 대해서는 ‘핀 포인트’ 대응을 하되 과도한 규제가 전 국민의 외환 거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