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 중인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삼성전자(005930) 반도체 공장을 찾아 자국도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세계적으로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를 향한 각국의 투자 유치 구애가 더 강렬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산체스 총리는 17일 오전 평택캠퍼스를 찾아 반도체 1라인(P1)을 둘러봤다. 스페인 정부 수반이 삼성전자 사업장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산체스 총리 외에 레예스 마로토 산업통상관광부 장관 등 스페인 주요 부처 장차관 40여 명도 현장을 함께 찾았다.
삼성전자에서는 경계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사장과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이 스페인 총리 일행을 맞았다. 이들은 1시간가량 라인을 둘러본 뒤 비공개로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산체스 총리는 삼성전자와 스페인 경제계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체스 총리는 이날 평택캠퍼스 방문 후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세계 최고로 발전된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며 “스페인은 120억 유로를 투자해 반도체 공급망의 플레이어가 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은 최근 경제 산업구조를 관광에서 첨단산업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반도체 등 글로벌 기업 투자를 유치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로 스페인 정부는 지난 5월 반도체 산업에 120억 유로(약 17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밝히고 투자 대상 기업을 찾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5㎚(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공정의 대규모 반도체 제조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삼성전자 등 글로벌 대기업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430억 유로(약 59조 80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추진 중이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3월 유럽 내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아일랜드·이탈리아·폴란드와 함께 스페인도 투자처로 거론했다.
반도체 투자와 관련해 산체스 총리는 올 9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 부회장과 만나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산체스 총리는 스페인의 반도체 산업 육성 구상을 밝히고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국 국가 원수들이 직접 나서서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5월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같은 장소를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나란히 섰다. 이달 5일에는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반도체 생산 라인을 직접 살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