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감독이 2022 카타르 월드컵 H조 첫 경기 우루과이전이 열리는 24일(한국 시간)이면 한국 축구 사령탑 취임 1556일째를 맞는다. 2018년 8월 22일부터 4년 3개월 넘게 지휘봉을 잡고 있다. 한국 대표팀 감독 사상 최장수다. ‘독이 든 성배’의 역사를 살펴보면 더 대단해 보인다. 앞선 외국인 감독들인 핌 베어벡(네덜란드)은 1년 1개월, 조 본프레레(네덜란드)는 1년 2개월, 움베르투 쿠엘류(포르투갈)는 1년 2개월 만에 옷을 벗었다. 다들 충격적인 패배나 답답한 전술에 대한 비판에 경질, 자진 사퇴 등의 형식으로 팀을 떠났다.
벤투 감독도 지난해 3월 한일전 0 대 3 충격패와 이른바 ‘빌드업 축구(후방부터 차근차근 공격 전개)’에 대한 불신 등으로 강한 비판 여론에 부닥치기도 했다. ‘아는 선수만 기용한다’ ‘빌드업만 강조해 다른 것은 놓친다’ 등의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한일전 완패 때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사과문까지 낼 정도로 후폭풍이 거셌다. 공교롭게도 한일전 당시 선발 원톱 공격수는 이강인(마요르카)이었다. 벤투 감독은 이후 이강인을 쭉 배제하다가 월드컵 최종 명단에 깜짝 발탁했다. 지난해 10월 시리아와의 월드컵 최종 예선 3차전 때는 후반 막판 동점골을 내주자 한 TV 해설위원이 경기 중에 경질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일본전 대패는 협회의 행정력에 책임이 컸고 시리아전은 손흥민(토트넘)의 ‘극장골’로 2 대 1로 이겼다. 시리아전 뒤 한국은 더 부지런히 승점을 쌓아나간 끝에 손쉽게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냈다. 올 3월에는 아시아 최강 이란을 2 대 0으로 꺾기도 했다.
4년여 동안 벤투호는 A매치 53경기에서 단 7패(34승 12무)만 당했다. 승률 64%의 엄청난 성적이다. ‘답답하기는 해도 결과는 낼 줄 아는 감독’이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하지만 34승 중 24승이 아시아팀에 거둔 승리다.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남미(우루과이)·아프리카(가나)·유럽(포르투갈)을 상대한다. 올 6월 브라질과 평가전에서 벤투호의 빌드업은 상대 전방 압박에 무너졌고 결국 1 대 5로 크게 졌다. 빌드업 축구는 압박에 능한 강팀을 만나면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하기도 한다. 올여름 빅리그에 진출해 소속팀 나폴리의 무패 행진을 이끈 중앙 수비수 김민재의 어깨가 그만큼 무겁다.
4년 넘는 긴 시간을 보장받으며 성과를 낸 벤투 감독은 이제 3경기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단기전을 통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른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포르투갈 대표팀 선수로 참가해 약팀(한국)의 반란을 뼈저리게 실감했던 그는 2014 브라질 대회에서는 감독으로서 포르투갈을 이끌었지만 1승 1무 1패로 16강 진출이 좌절되는 경험도 했다.
개인 세 번째 월드컵에 나서는 벤투 감독은 14일 카타르 도하에 입성한 뒤 하루 한두 차례 훈련으로 선수들의 컨디션과 조직력, 전술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공수에 손흥민과 김민재라는 확실한 축이 있지만 부상당해 회복 중인 손흥민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느냐, 김민재를 중심으로 한 수비 조합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느냐는 전적으로 감독의 판단과 결정에 달려 있다. 벤투 감독은 첫 경기 승리나 16강 각오에 말을 아끼고 있다. 대신 주장 손흥민이 21일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남겼다. ‘준비는 끝났다. 가장 큰 꿈을 좇을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