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 직원들이 회사로부터 지원받은 자녀 대학 등록금(학자금)을 최근 대법원이 퇴직 후에도 상환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한전 전·현직 직원들이 반납해야 할 돈이 95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전이 자녀 학자금 대부(융자)를 시작한 1999년부터 현재까지 누적 대출액은 4080억 원이다. 이 중 상환이 완료된 3122억원을 제외하면 한전 직원들이 갚아야 할 금액은 약 958억 원이다.
앞서 한전 퇴직자 27명은 2015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자녀 학자금 융자는 회사가 사실상 대신 갚아주는 ‘사내 복지’ 차원이기 때문에 상환 의무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1·2심에서는 한전 퇴직자들이 승소했지만 지난 14일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환송하면서 회사가 지원한 학자금은 사내 복지가 아닌 상환 의무가 있는 대여금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소송으로 상환이 유보됐던 퇴직자들의 자녀 학자금 136억 원과 소송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상환이 미뤄졌던 302억 원, 상환 시한이 남은 520억 원 등 총 958억 원이 전·현직 직원들의 급여와 퇴직금에서 빠져나가게 됐다. 이번 판결 외에도 전·현직 직원 1233명이 8건의 학자금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전 직원들은 2010년 제도가 변경되기 전까지 한전 복지기금을 통해 사실상 자녀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아왔다. 그러나 감사원의 여러 차례 지적에 한전은 자녀의 성적에 맞춰 따로 장학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제도를 바꾸고 직원이 빌린 자녀학자금을 급여 또는 퇴직금에서 공제했다. 제도 변경 전 학자금을 빌렸지만 상환액이 남아있던 직원들까지 일괄 적용되면서 이에 반발한 전직자들이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한전은 최근 5년간 상환액이 남은 퇴직자를 대상으로 매년 수차례 독촉장을 보내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전은 2018년과 2019년에는 전년도 퇴직자 400~500명에게, 2020년과 지난해에는 전체 퇴직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서너 차례씩 상환 통보 문서를 보냈다.
학자금 상환 의무를 명확히 고지하지 않고 거액의 퇴직금과 급여를 공제한 점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정일영 의원은 “회사가 자녀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주는 줄만 알았던 직원들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결과일 것”이라며 “갑작스러운 환수 조치가 있기 전 내부 규정 재정비 등에 미진했던 한전이 다시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