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여명] 巨野의 법인세 아집, 순양家처럼 '연패' 부르고 싶나

■이철균 정치부장

미래 아는 진도준, 순양家 삼남매에 연승

벼랑 끝 전쟁, 작은 차이가 기업 '승패'로

巨野는 기업의 손발 묶는 법인세만 고집

최강국 美도 감세 카드로 투자 유치에 집중

국내 4대 그룹, 美 투자 약속만 560억 달러

운동장 더 기울면 기업의 脫한국 가속될 것

이철균 정치부장이철균 정치부장




jtbc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 진도준은 순양그룹 직원에서 순양가(家)의 막내아들로 환생했다. 여러 사연으로 순양그룹을 돈으로 사는 게 그의 목표다. 순양백화점에 이어 순양증권을 인수했다. 이런 식이면 그룹의 대권도 머지않았다. 환생 전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는 그로서는 쉬운 게임이다. 기억 속의 사건은 그대로 나타났고 그는 그 상황에 맞춰 전략·전술만 잘 짜면 됐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순양가 삼 남매와 그의 사촌 형은 경쟁이 되지 않는다. 정보의 차이가 빚어낸 결과다.

픽션의 드라마와 현실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물론 비약이다. 하지만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기업들도 처지는 비슷하다. 작은 차이가 기업의 승패(勝敗)로 이어진다. 이왕이면 더 많은 정보를, 더 훌륭한 리더를, 더 유리한 투자 환경을, 더 좋은 인재와 기술을 갖고 싶어 하는 이유다. 기업은 그래서 끊임 없이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규제와 세금 문제를 두드린다. 재계는 심지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의 규제·세금 체계만 해 달라”면서 기대 수준도 낮춘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묶인 손발을 더 풀어 달라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도 반응은 했다. “신발 속 돌멩이 같은 규제를 빼내겠다”고 한 뒤 한덕수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정부 출범 후 6개월간 276건의 규제를 없앴다. 기업의 투자를 늘리기 위해 세법도 손댔다. 정부는 법인세의 최고세율을 기존 25%에서 22%로 낮추는 세법 개정안을 냈다. 반도체·배터리·백신 등 국가전략산업의 세액공제를 8%(대기업)로 높였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소위 반도체법(K칩스법)도 발의,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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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거야(巨野)의 벽에 막혔다. 법인세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법인세 인하는 ‘부자 감세’가 아닐뿐더러 투자 확대로 이어진다고 항변해도 쇠귀에 경 읽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비율이 OECD 38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여섯 번째로 높다는 통계도 무시한다. 법인세 개정안이 통과되면 중소기업 9만여 곳도 감세 혜택이 있다는 분석(전경련)도 관심 없다. 이 뿐 아니다. 미국은 물론 유럽·일본·중국 등이 반도체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도 K칩스법은 4개월 넘게 국회에 계류돼 있다. 반도체법도 대기업에 더 많은 혜택을 준다면서 통과를 막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종합부동산세의 부작용을 체감한 뒤에야 ‘반쪽’ 반성문을 썼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집 값을 잡겠다며 징벌적 수준의 종부세법 개정안을 냈을 때 다수의 경제학자들과 언론이 그 부작용을 경고해도 애써 무시했다. 선거의 대패로 이어진 뒤에야 개정에 동의했다. 법인세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투자를 막고 기업의 이탈을 초래한다면 역시 또 때늦은 반성문을 써야 할 것이다.

기업들은 물론 생존을 위해 악조건에서도 투자를 한다. 경제 침체 와중에도 국내 대기업은 상반기에 90조 원(CEO스코어)을 투자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 이상 늘렸다. 하지만 우리 기업이 국내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는 시각은 환상이고 착각이다. 규제가 덜하고 세금이 더 낮은 곳에 기업들은 투자를 더 늘린다. 삼성·SK·현대차·LG그룹 등 4대 그룹이 미국에 약속한 투자 규모는 약 560억 달러다. 지금 같은 환경이면 탈(脫)한국의 속도를 더 낼 수도 있다.

5월 한국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산 공군기지에서 내리자마자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찾았다. 미국 대통령이 봇짐도 풀지 않고 방문 국가의 산업 현장부터 방문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세계 최고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뒀기에 가능했다. 이뿐인가.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8월 대만을 찾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의 류더인 회장을 가장 먼저 만났다. 이게 무엇을 뜻한다고 보는가. 삼성전자와 TSMC는 화끈하게 화답했다. 삼성전자는 7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2000억 달러(약 260조 원·20년간)의 투자 계획서를 제출했다. TSMC 역시 공장을 찾은 바이든 앞에서 당초 계획의 3배를 웃도는 400억 달러(약 52조 원)를 투자해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 2개를 건설하겠다고 했다.

세계 최강의 정치 지도자들도 투자 앞에서는 버선발로 나선다. 반면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일부 시각은 어떤가. 기업의 투자를 놓고 고용 없는 투자로 폄하한다. 혜택을 주면 기업만 좋을 뿐 낙수 효과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기업들은 그래도 국내에 투자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다. 그 근거가 참으로 궁금하다.


이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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