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국내 제조업 경기가 냉랭해진 가운데 잘 나가는 배터리 업계마저 성장세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전기차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는 데다 환율 하락으로 해외 사업 매출에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가격 정체 가능성과 증설 경쟁에 따른 인건비 증가도 업계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배터리 가격 상승세가 내년 정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블룸버그NEF는 리튬이온배터리 연 평균 가격이 2022년 기준 킬로와트시(kWh)당 151달러에서 2023년 기준 152달러로 소폭 오르는 데 그칠 것으로 최근 전망했다. 올해 배터리 가격이 전년 대비 7%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이 같은 전망은 경기침체 우려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가격은 리튬, 니켈 등 핵심 광물 등락에 연동된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탄산리튬의 톤당 가격은 23일 기준 49만7500위안으로 지난달 같은 날에 비해 약 14% 내렸다. 이에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 가격도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내연기관차에 비해 가격이 비싼 전기차 수요가 둔화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KPMG는 최근 자동차 업계 최고경영자급 200여명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례 자동차 경영진 설문조사 보고서’에서 2030년 전세계에 판매되는 신차 중 전기차의 비중을 10~40%로 전망했다. 지난해 예상치인 20~70%에 비해 최대 30%포인트나 급감한 수치다.
특히 미국의 경우 전기차 판매 비중이 신차 시장의 35%에 그치며 지난해 전망치(65%)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으로 할부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당장 내년 수요부터 악영향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니켈 함량이 높은 한국 배터리는 주행거리가 긴 중·고가형 전기차에 탑재되는 비중이 크다"면서 “전 세계에서 보급형 전기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커질수록 중국에 비해 국내 배터리 업계가 불리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환율 하락세는 배터리 업계 실적에 타격을 줄 수 있다. 10월 말 1440원대까지 오르며 정점을 찍은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며 1300원을 밑돌고 있는 상황이다. 북미를 중심으로 해외 증설에 나서고 있는 국내 배터리 업계로서는 환율 하락에 따른 매출·이익 감소가 불가피하다. 모건스탠리는 “급격한 원화 강세는 영업이익에 하방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LG에너지솔루션의 4분기 연결 영업이익 추정치를 기존 5250억원에서 4160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키움증권은 삼성SDI의 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를 기존 5949억원에서 5776억원으로 소폭 낮췄다.
날로 커지는 인건비 부담도 여전하다. 업계 간 증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력 확대에도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로 직원을 뽑으려면 경쟁사보다 좋은 복지나 급여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LG엔솔·삼성SDI·SK온 등 배터리 3사의 총 인력은 지난해 말 2만2391명에서 올해 9월 2만4357명으로 9개월 만에 약 9% 증가했다. 증권사들은 성과급 등 일회성 비용이 반영되는 점도 배터리 업계의 실적 하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