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성직자들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3일 밤(이하 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공항에 도착했다. 한국 대표단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인 신우식 신부, 염수정 추기경,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가 포함됐다. 휴가로 지난해 말 귀국해 한국에 머물던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도 한국 대표단과 함께 도착했다.
이들은 5일 오전 9시 30분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열리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염 추기경은 입국장에서 “내가 주교가 된 뒤 바티칸에서 연수할 때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으로서 강의했다”며 “명석하고 신앙에 대해서 확고하게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난다”고 설명했다. 유 추기경은 이어 “(대전교구장으로 재임하던) 2008년부터 대전교구가 ‘한 끼 100원 나눔 운동’을 펼친 것도 그분이 말씀하신 사랑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였다”면서 “내게는 특별한 교황이었고 머지않아 큰 교황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주교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비록 한국을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각별했다고 전했다. 그는 “본인이 독일인이라서 민족의 분열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잘 아셨다”며 “특히 남북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등 한반도 문제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계셨던 분”이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 주교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신자들에게 용서·화해·자비의 삶을 살라고 많이 강조했다”며 “그분의 말씀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계층 간, 도농 간, 남북 간 갈등을 소멸하고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정 대주교는 베네딕토 16세가 누구보다 따뜻하고 너그러운 교황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2009년인가 2010년에 바티칸에서 전 세계 사제회의가 있었다. 사제들의 잇따른 성 추문으로 뒤숭숭하던 그 시기에 베네딕토 16세가 전 세계에서 모인 사제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과 신뢰의 눈길로 바라보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며 “그 눈길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 후임 교황인 프란치스코가 워낙 뛰어난 분이라 베네딕토 16세에 대한 평가가 덜 이뤄졌지만 훗날 그분의 참모습에 대해 재평가를 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주교는 “베네딕토 16세는 600여 년 만에 교황직에서 사임하며 일종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며 “은퇴 후에는 기도하는 삶을 사셨다. 선종하자마자 하느님 곁으로 바로 가셨을 것이다. 하느님 곁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청하는 마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