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권을 향해 ‘고금리 이자 장사’ ‘성과급 돈 잔치’ 등의 비판이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과점 폐해가 큰 은행 산업의 경쟁 시스템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하면서 5대 은행에 대한 과점 체제 완화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예금 및 대출 시장의 80~90%를 점유하고 있는 5대 은행의 시장 과점 체제의 판을 흔들기 위해 제4의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등 경쟁을 유도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당장 이달 중 은행권·학계·법조계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은행 간 자율 경쟁을 통해 금융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혁신 서비스나 방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비상경제민생회의 관련 브리핑’에서 “예대금리차 공시 및 대환대출 플랫폼, 예금 비교 추천 플랫폼 등을 통해 기존 금융사 간 경쟁 강화 방안과 금융과 정보기술(IT) 간 영업 장벽을 낮춰 유효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이 검토 과제로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는 ‘메기’ 역할을 담당할 제4의 인터넷전문은행 출범과 추가적인 예대금리차 축소 방안 마련, 은행 인가 방식을 기능별로 세분화한 스몰 라이선스 도입 등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은행의 원화 예수금 시장점유율은 91.3%에 달한다. 2020년(91.7%), 2021년(91.2%)과 비교하면 소폭 떨어졌지만 여전히 90% 이상의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최근 3년간 원화 대출금 시장점유율도 84% 이상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이 5대 시중은행의 과점 체제로 이뤄지다 보니 사실상 금리 인하 경쟁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실제로 당국은 고금리가 본격화하면서 소비자에게 가장 민감한 부분인 ‘금리’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19개 은행의 월별 예대금리차 공시를 도입하는 등 은행 간 자율 경쟁 촉진을 유도해왔다. 하지만 이를 통한 금리 인하 효과보다는 매달 ‘은행 줄세우기’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오자 아예 현 과점 체제의 틀을 바꾸는 방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안은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토스뱅크에 이은 제4의 인터넷은행 출범이다. 최 수석은 브리핑에서 “금융과 IT 간 영업 장벽을 낮춰 유효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이 검토 과제로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당국은 인터넷전문은행 인허가 시 주요 과제로 중금리대출 보급 활성화를 주문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을 통해 1금융권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활성화뿐 아니라 여수신 금리 경쟁까지 추가로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앞서 출범한 인터넷은행들의 파급력이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말 기준 인터넷전문은행 3개사의 중·저신용자 대상 대출 비중은 약 25%대로 30%에도 못 미친다.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은행 라이선스 세분화도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단일 인가로 돼 있는 은행업의 인가 단위를 나눠 특정 분야에 경쟁력 있는 특화은행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과점 체제가 깨질 수 있다는 취지다. 중소기업을 위한 각종 여수신 상품을 취급하는 영국 최초의 인터넷전문은행 '아톰뱅크'와 같은 방식이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리테일 쪽은 조금 더 경쟁적일 필요가 있고 기업금융 쪽은 조금 더 전문적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라면서 “다만 진입·퇴출 등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부분은 정책 당국에서 고민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 당국 등이 시그널을 던지는 것보다 시장 경쟁을 촉진시켜 소비자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것이 정공법일 것”이라며 “은행업 진입 기준 자체를 다양하게 만들어 여러 형태의 전문화된 은행, 분화된 은행이 출연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라이빗뱅커(PB)전문은행, 기업금융전문은행 등 좀 더 분화되고 전문적인 은행이 출연할 수 있도록 라이선스를 다양하게 해주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다만 5대 은행의 과점 체제를 깨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과점 체제로 발생한 부작용을 해소해 금융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나 혜택을 확대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새로운 금융산업의 문턱을 낮춰줬을 때 우후죽순 은행들이 생기면 경쟁에서 도태되는 은행을 이용한 금융소비자들의 피해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신규 은행업을 출연시키기보다는 인터넷은행·제2금융권 등의 겸업화를 촉진함으로써 업권 간 경쟁을 강화하고 시중은행의 과점 현상을 해소하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